딸아이 담임 선생님-김현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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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학년초, 보기 드물게(?) 남자선생님이 딸아이의 담임선생님이 되셨다.
반 친구와 함께 분명히 호랑이선생님일 것이라고 추측을 하던 딸아이의 생각은 등교 이틀만에 사라지고 말았다.
『엄마, 우리 오늘 숙제 없어요.』가방 놓기가 무섭게 갈래머리를 나풀거리며 뛰어 나갔다.
선생님께선 얼핏 엄마인 내가 보기에 조금은 이해할 수가 없는 학생지도관을 가지고 계셨다.
『소풍 때는 엄마모시고 오는 사람 종아리맞기.』, 『간식 싸오는 사람 교실청소하기.』
나중에 반에 어머니가 안 계신 친구들을 생각해서 하신 일이라는 것을 알았을 때 나는 「참 스승」의 생각을 읽을 수 있었다.
『엄마, 오늘은 남자 짝하고 손잡고 교단에 서서 「이슬비 색시비」시를 마주보고 읊었어요.』 딸아이는 이런 얘기도 전해주었다.
숙제가 없는 반, 모두가 친구인 반에 다니는 딸아이는 시험을 못 보아서 성적이 나쁘다고 죽는 오빠 언니들이 이상하다고 했다.
우리 선생님은 공부를 못해도 많이 예뻐해 주신 다며….
학교에 갔다오면 늘 생글생글 자랑삼아 학급의 이야길 중계하는 딸아이의 얘기에 1학년 짜리 아들아이도 나도 2학년이 되면 5반 누나선생님 같은 선생님을 만났으면 좋겠다며 부러워한다. 엄마인 나도 2학년 5반 학생이 되어 보았음…하고 부러워한다.
여름방학을 맞으면서 가족여행 등 신나는 스케줄을 잡아놓은 딸아이는 책상서랍 속에 고운 편지지를 준비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방학 때 선생님께 안부편지 보낼 것이라는 것이었다. 지금쯤 1,2장쯤 편지를 보냈을지도 모르겠다.
『우리 선생님도 반 아이들에게 편지를 보내시려고 편지지를 8권이나 사셨데요….』
자랑스럽게 말하던 아이의 표정을 나는 지금도 기억한다. <서울 영등포구 문래6가 현대아파트 201동 802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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