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금작품 재평가 돼야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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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분단이라는 비극적 상황이 야기시킨 정치적 규제에 의해 유실되었던 월북문인 1백20명의 해방이전 작품들이 마침내 돌아왔다. 지난 3월31일 정부의 1차해금에의해 우리문학사에 돌아온 정지용과 김기림이 우리문학에 끼친 파장을 돌이켜 볼때 1백20명의 월북문인이 다시 돌아왔다는 사실은 40년동안 불구상태로 걸어온 우리현대문학사가 단시일내에는 감당해낼수없는 충격과 감동이 아닐수없다.
홍명희·이기영·한설야등 대표적인 월북작가들이 2차해금에서 제외된것은 우리 문학사의완전한 정통성회복을 위한또다른 숙제로 남을 것이나 되찾은 작가들을 정리해보는 작업만해도 벅찬일일 것이다. 문학사는이제 다시 씌어져야 한다.
돌아온 월북문인중 이미 문단및 학계에서 중요하게 평가되고 있는 소설가로는 박태원·이태준·현덕·안회남·허준·송영·김사량·김남천·조명희·최명익등이, 시인으로는 임화·오장환·백석·이용악·설정직·박팔양등이 꼽힌다.
이들의 작품집은 기민사·깊은샘·슬기·창작과비평사·풀빛등의 출판사에의해 일부 출판됐거나 준비중이다.
깊은샘에서 전집출간을시작하고있는 작가 이태준은 30년대 순수문학동인이었던「9인회」의 멤버로 활약,『색시』『달밤』『가마귀』『오몽녀』등의 작품을통해 한국현대단편문학의기법및 문체를 예술적 경지에 올려놓은 장본인으로 평가된다. 역시 9인회 멤버였던 박태원은 주로 식민지치하 서울서민층의 몰락상을『천변풍경』『소설가 구보씨의일일』등을 통해묘사, 우리세대소설의 개척자로 명성이 높다.
안회남 역시「예술파작가」라는 칭호에 걸맞게 삶의 단면을 치밀하게 묘사한『그날밤에 생긴일』『탁류를 헤치고』등을남겼으며, 심리주의 소설의대표적 작가 최명익은 탁월한 심리주의 소설『장삼이사』가 유명하다. 또한 북한에서 숙청당한 김남천은 봉건제도붕괴및 초기자본주의태동을 배경으로한가족의 몰락을 다룬 대하장편『대하』로 유명하며, 일본문단에서 천재로 통했던『태백산맥』의 김사량,『낙동강』의 조명희등도 빼놓을수 없는 소중한 작가들이다.
시인중에서는 지난3월해금된 정지용·김기림과맞먹는 비중을 갖고있는임화가 제일 먼저 거론된다. 현재 풀빛출판사가 전집을 준비중인 임화는 20년대후반부터「카프」에 가입, 일제 하프로문학운동을이끈 대표적인 계급문학이론가이자『현해탄』등의시집으로도 명성을 날린시인이었다. 그는 월북이후 53년 미국간첩혐의를뒤집어쓰고 처형당함으로써 지용·기림과함께 대표적인 문학사의 미아로남아있었다.
지용의 제자로 청각적이미지와 서정걱 시풍이독특한 모더니스트 오장환,『여수시초』로 유명한시인 박팔양도 새로운시문학사기술에 있어 백석·이용악등과함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할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문단및 학계가 할일은 여전히 미해금상태로 남아있는 홍명희등거물작가들의 해방전 작품을 돌려받는 일일 것이다. 나아가 민족공동체문학으로서 남북한문학40년사가 한자리에서논의되는 장을 향해 적극적으로 나아가야 할것이다. <기형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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