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풀이 문학」은 안된다|정규웅(중앙일보 논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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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민주화시대의 분단문학이 어떤 모습을 보일 것인가 하는것도 물론 중요한 관심사가 되겠지만 그에 못지않게 관심이 가는 것은 미체험세대, 즉 6.25를 직접 체험하지 못한 젊은 세대의 분단문학입니다. 6.25나 분단상황 같은것이 관념으로만 남아서는 안되는것처럼 그 실제의미가 직접 체험하지못한 탓으로 과장되거나 과소평가 되어서는 더더욱 안되기 때문이지요.』
지난번 이 난에 『민주화시대의 분단문학』제하의 글이 게재된후 사석에서 만난 50대 초반의 한 중견 문학평론가는 이렇게 말했다. 앞으로의 한국문학이 이들 6·25 미체험세대에 의해 주도될것이므로 분단이데올로기에 대한 시각의 변화에따라 그들에 의한 분단문학의 양상도 크게 달라지리라는 것이다.
실제로 80년대에 들어선 이후 이들 6.2 5미체험세대에 의한 분단문학은 질적으로나 양적으로 괄목할만한 양상을 보여주었다. 6.25체험의 마지막 세대라 할수 있는 김원일(『노을』『불의 제전』), 조정래(『태백산맥』)의 뒤를 이어 2∼3세의 유아기에 6·25를 「겪은」이문열의 『영웅시대』, 김성동의『풍적』등이 관심을 모았고, 6·25이후 태생인 임철우의 『아버지의 땅』, 이창동의『소지』등이 순수미체험세대의 분단소설로서 주목을 끌었다.
물론 다른 모든 역사적 사건이 그렇듯 소설소재로서의 6.25가 체험세대의 전유물일 수는없다. 생생한 현장감을 전달한다는 측면에서는 체험세대가 미체험세대보다 앞설수는 있지만 문학이 반드시 체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만은 아닐진대 미체험세대의 분단문학은 또 그나름대로의 가치를 지닐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분단문제나 6.25전쟁에 대한 체험세대와 미체험세대의 의석과 시각이 얼마만큼의 격차를 보이느냐에 있다. 의식과 시각의 격차가 크면 클수록 분단문학의 양상도 더욱 큰 변모를 보이게될 것이기 때문이다.
미체험세대의 분단문학에 대한 그 중견평론가의 우려도 여기에서 근거한다.
즉 6·25를 직접 체험하지 못함으로해서 분단과 6.25는 작가의 의식속에 허상으로 남아 있을수도 있고, 그 경우의 분단문학은 문학의 측면에서나 이데올로기의 측면에서 문제의 소지를 남길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그러한 관점에서 보자면 어느 미체험세대 작가의 분단소설을 「황당한 이데올로기소설」로 간주한 어느 평론가의 견해나, 몇몇 미체험세대 작가들의 분단소설을 가리켜 「한풀이 문학」으로 표현한 몇몇 평론가들의 생각이나 그 작품들의 문학적 성과와는 다른 차원에서 깊이 음미해볼 만하다.
사실 미체험세대의 분단문학이「황당한 이데올로기 소설」이나「한풀이 문학」정도로 받아들여지는데서 그친다면 그와같은 작품들을 통해서 분단의식의 극복을기대하기는 어렵다. 문학작품에 대한 평가가 반드시 절대적 진리 일 수는 없지만 「황당한…」「한풀이…」따위의 지적을 받았다면 그와 같은 표현에 함축된 의미를 진지하게 생각해보지 않으면 안된다.
거기에는 아마도 분단이나 6·25를 의식속에「자기자신의 것」으로 수용하지 못한 것도 그 원인의 하나로 작용하고 있을법하다. 미체험세대 작가의 분단소설속에 나타나는 이른바 「한풀이」가 작가 자신의 한이 아니라 그들 부모세대의 한으로 나타나고 있는 점도 좋은 본보기에 해당한다.
문학이 작가의 「한풀이」로 이용돼서는 안된다. 더구나 분단문학이 작가 부모세대의 「한풀이」를 대행하는데서 그친다면 문학속에서의 분단의식은 극복되기는커넝 더욱깊은 심연속에 빠지게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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