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성 대법관 "법조인 대통령 기대가 실망으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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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인 대통령의 탄생으로 국민과 더불어 큰 기대에 차있었으나 현실은 기대가 실망으로 변하고 있다."

오는 11일 퇴임하는 서성(徐晟)대법관이 8일 노무현 정부를 강하게 비판했다. 서울지법 대회의실에서 열린 퇴임 강연에서다.

盧대통령의 광양 발언 등을 계기로 조성된 청와대와 검찰의 갈등 분위기가 채 가라앉기도 전에 나온 말이어서 또 다른 파문을 부르고 있다.

그는 "정부가 우왕좌왕하고 정치권도 무기력하기 짝이 없다. 우리 사회의 중심이 흔들리고 있다"고 지적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이어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사법부가 '동네북'이 되고 있지만 이제는 법원이 흔들리고 있는 나라의 중심을 잡는 역할을 하며 나라를 지켜야 한다"고 말했다.

특히 지난달 대법관 임명 파동과 관련해 그는 "개혁과 변화는 필요하지만 억지를 부려 순리를 거슬러선 안 된다"면서 "현 대법원 운영체제에서는 실무에 능한 사람이 우선 대법관으로 와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했다.

사법부가 '외풍(外風)'에 의해 개혁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는 뜻을 분명히 피력한 셈이다.

그는 특히 개혁파 소장 판사들을 겨낭한 듯 "이번 파문에서 일부 법관이 소수 의견에 부화뇌동해 법원에 내분이 있는 것처럼 보이게 한 것은 서글픈 일이었다"고 말했다.

이런 그의 쓴소리는 그가 특히 법관의 최고 지위인 대법관이라는 점에서 작지 않은 반향을 불렀다.

서울 출신인 徐대법관은 경기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사시 1회. 춘천지법원장.법원행정처 차장 등을 거쳐 1997년 대법관에 임명됐다. 법원행정처 기조실장 재직 때부터 사시 합격자 수의 증원, 예비판사제 도입 등 사법제도 개혁 작업에 참여했다.

그러나 85년 이른바 '김근태씨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1심 재판장으로서 접견금지 처분을 내린 일로 재야 법조계의 비난을 받은 바 있다.

김현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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