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대법원장 이일규씨|법관은 판결을 통해 말해야만|정년없애도 2년후에는 퇴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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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의 가장 큰 임무는 공정한 인사로 법관들이 소신껏 재량과 헌법정신에 따라 재판에 임할 수 있도록 적재적소에 보내는 일이라고 봅니다.』
대법원장 임명동의안이 국회에서 통과된 5일 오전 서울서초동 제일생명빌딩 6층 변호사 사무실에 나온 이일규변호사(68·전대법원판사)는 고령답지 않게 건강하고 단정한 모습으로 의욕과 활기가 넘쳤다.
『나이때문에 대법원장을 2년여밖에 못하겠지만 그렇다고 과도체제라 부르는 것은 마땅치 않아요. 대법원장 재임기간이 문제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했느냐가 중요한 만큼 적당히 자리나 지키다 나오진 않을 겁니다.』 이변호사는 그러나 법원조직법을 개정, 대법원장 정년을 없애자는 일부 의견에 대해서는 『임명 당시의 법이 중요한 만큼 법이 개정되더라도 현재법규정에 따라 진퇴를 결정하겠다』고 밝혀 만70세가 되는 「90년12월15일」퇴진을 분명히 했다.
이변호사는 특히 인사의 공정성을 거듭해 강조하며 『85년 법관인사파동 때 대법원판사회의등 법관인사에 합의제를 도입하자고 주장했던 일도 있었다』고 밝히고 비밀보장 등의 문제가 있지만 지금도 개인적으로는 필요한 제도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제도가 없더라도 인사문제는 대법원장이 선임법관들과 의논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밝혀 앞으로 법관인사는 공개적 합의제로 운영할 뜻을 비쳤다.
이변호사는 최근 6·15 법관성명이후 사법부 공백상태가 된 것같아 안타깝다며 이를 빨리 수습하기 위해 인사를 서두르겠다고 밝혔다.
『대법관 임명제청 등 새 대법원 구성에 대한 나름대로의 구상은 정리되어 있습니다. 이제 임명동의안이 통과됐으니 마음에 두고있는 분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만나볼 생각입니다.』
이변호사는 그러나 관심의 초점인 재야 변호사의 대법관 영입 폭에 대해서는 『아직 밝힐 단계가 아니다』라며 언급을 피했다.
이변호사는 또 대법원판사 재임시절 자신이 유달리 소수의견을 많이 낸데 대해서는 『소수의견을 좋게 봐주니 고마운 일이지만 매명을 위한 것으로 오해받을까 두렵다』며 『소수의견이 소신이듯 다수의견도 소신이라면 나무랄 수없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법관서명에 대해서는 『비록 법관서명이 사법부 쇄신의 계기가 됐다고 하더라도 법관들의 집단적인 의사표시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단호한 입장이었고 『판사는 판결을 통해서만 말한다는 점에서 다른 방법을 찾아 의사표시를 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가 계속되는 동안 사무실에는 축하전화가 잇따라 걸려왔으며 전국 각지에서 축전이 줄을 이었으나 내방객은 거의 없었다. <이상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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