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과 함께하고 싶다“ 미 공화당 1인자의 은퇴 선언

중앙일보

입력

“아이들에게 ‘주말 아빠’로만 기억되고 싶지 않다. 인생의 우선순위를 새로 둘 것이다.”

11일(현지시각) 미국 공화당 의회의 1인자 폴 라이언(48) 하원의장이 의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가운데)과 부인 샐리 등 가족들.[페이스북]

폴 라이언 미국 하원의장(가운데)과 부인 샐리 등 가족들.[페이스북]

라이언 의장은 이날 기자회견에서 가정에 충실해지고 싶다며 오는 11월 중간선거 불출마 및 정계 은퇴 계획을 밝혔다. 그는 1998년 위스콘신주 하원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해 2015년엔 미 역사상 최연소 하원의장이 된 공화당의 거물이다.

라이언 의장은 기자회견에서 정치후원금 모금 행사에서 만난 노인에게서 들었다는 얘기를 꺼냈다. “사람들은 당신이 아이들과 함께 보낸 시간의 양보다 질이 중요하다고 말했겠지만 다 거짓말이다. 양과 질이 모두 중요하다는 걸 잊지 마라”고 들었다며 기자회견 내내 가족에 대한 애정을 과시했다.

실제로 라이언 의장은 워싱턴 생활 중에도 주말이면 가족이 있는 위스콘신주로 돌아가 가족과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려져 있다.

CNN 등 외신은 라이언 의장의 갑작스러운 결단을 두고 다양한 추측을 내놓고 있다. 그가 16살 때 아버지가 심장마비로 숨진 뒤 사회보장연금으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로 어려운 시절을 보낸 경험이 작용했다는 것이다. 라이언 의장은 중‧고등학생 때 치매를 앓는 할머니를 돌보며 맥도날드 매장에서 일했다. 마이애미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웨이터와 헬스 트레이너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그러나 가족은 표면적인 이유일 뿐 그를 둘러싼 정치 상황 때문에 은퇴를 결정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그동안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와 의회 사이에 끼어 일하는 게 쉽지 않았고, 민주당의 우세가 예상되는 이번 중간선거에서 책임을 피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미 일간지 뉴욕타임스는 그가 강경 보수파와 주류 공화당원,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 때문에 좌절감을 느껴왔다고 보도했다. 그가 트럼프 대통령의 도발적이고 모욕적인 행동에 대응해야 했다는 점도 지적했다. 워싱턴포스트는 라이언의 은퇴 선언이 공화당이 상·하 양원을 장악한 지 2년도 채 안 돼 이뤄진 것이라며 트럼프 대통령으로 인해 초래된 당내 분열 때문에 라이언이 힘든 시간을 보낸 끝에 물러났다고 분석했다.

라이언 의장은 CNN 인터뷰에서 트럼프 대통령에 대해 “우리는 출신과 세대가 모두 다르다”며 “트럼프와 나는 다른 스타일의 매우 다른 사람”이라고 밝힌 바 있다.

공화당 유력인사인 라이언 의장의 갑작스러운 은퇴 소식에 공화당은 중간선거에서 다수당 지위를 민주당에 내줄까 봐 걱정하는 모습이다. 11월 치러지는 중간선거가 트럼프 정부에 대한 심판 성격이 강할 수 있기 때문이다. 라이언 의장은 올해 선거자금 모금에도 활발하게 활동하는 등 선거의 구심점 역할을 해왔다.

정진호 기자 jeong.ji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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