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문 표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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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올림픽을 앞두고 가로의 주요표식들에 영문을 곁들일 모양이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지금 외국인에게 서울지도 한장주고 길을 찾아가라고 하면 제대로 갈 사람이 몇이나 될까.
우선 가로표지만 해도 가관이다. 같은 「노」를 놓고 영문표기는 세가지로 엇갈린다. 을지로(개), 종로(no), 통일로(lo)로 되어 있다. 한가지로 맞출수도 있는 표기를 무슨 고집인지 그렇게 어지럽게 만들어 놓았다.
필경 우리말 발음표기법에 충실한다고 그런것 같은데, 가로의 영문표지판을 무슨 문법교과서쯤으로 생각하는 사람의 소견이 참 답답하다. 「-ro」하나로 통일하면 외국인도 으례 큰길인가보다 하는 인식을 할 수 있을텐데 그처럼 어수선하게 만든 것은 그야말로 관료적 발상이 아니고는 생각하기 어렵다.
외국인이 길을 물을때 「종노」아닌 「종로」라고 했다고 못알아들을 한국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문표기는 간편하고 기억하기 좋게 써주면 그것으로 족하다.
또 하나 눈에 거슬리는 것은 고궁이나 유적지에 써놓은 영문표기다. 그 경우는 거의 예외없이 한영사전을 뒤져 번역해 놓은 것 같은 문장들이 많다. 물론 외국사람 구미에 맞게 써야한다는 얘기는 아니다. 문제는 상대가 알아는 듣게 써야할 것이다.
한번은 뉴욕의 메트러폴리턴 미술관을 갔는데 매점의 책임자인듯한 사람이 정중히 인사를 하더니 커다란 노트를 내놓으면서 『어느 나라에서 왔느냐』고 물었다. 당당히 국적을 댔더니 죄송하지만 이 말을 한국말로 써달라는 부탁을 하는 것이었다. 『여기 명화포스터 견본이 많으니 천천히 보시고 주문하시면 잘 포장해 드리겠습니다. 포장상자는 따로 돈을 내셔야 합니다.』
필경 앞서의 누구에게 그런 부탁을 해서 글을 받은 모양인데 문틀이 말이 아니었다. 한국고객이 오면 알아듣기 쉽게 내 보일셈인 모양이다.
서양과 우리는 같은 뜻의 말을 가지고도 쓰는 방식이 판이할 때가 있다. 좌우라고 할 때도 서양사람들은 우좌라고 쓴다. 전후도 서양식으로는 후전이고, 신구도 그 사람들은 거꾸로 말한다.
일본에서 소변금지를 「No Urinating」이라고 써붙였더니 그 뜻을 아는 외국인이 없더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이제 이만큼 국제사회에 노출되었으면 길거리의 영문표기정도는 쉽고 바르게 써놓아야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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