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기업의 흥망성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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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정권이 바뀌면서 여러가지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새마을」이 터지고 일해재단이 벗겨지고 또 이창석씨의 창원강업이 무너졌다. 불과 몇 달 전만해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이것들도 시작이지 끝이 아닐 것이다.
같은 민정당끼리의 정부교체도 이렇거늘 타당끼리면 어느 정도였을까. 우지끈 뚝딱 소리가 벌써 요란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평화적 정권교체가 어려운 이유를 짐작할 만하다.
워낙 저질러놓은 일들이 많아 남의 손에 맡길 수가 없는 것이다. 여소야대의 정치판도에서 앞으로 무슨 일들이 터질지 예측불허다. 흥미로우면서도 가슴 조마조마 하다.
창원강업 케이스는 힘의 재편성에 따라 부의 재편성이 시작되는 지극히 작은 한 예에 불과하다. 재계 지각변동의 한 신호인 것이다.
이창석씨의 창원강업 스토리는 간단하다. 제5공화국의 시작과 더불어 막강한 힘을 배경으로 불꽃같이 일어났다 그 힘이 수그러지면서 같이 주저앉은 것이다.
그 동안 포항종합제철의 도움을 받아 그 품안에서 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창석씨는 전대통령의 처남이다.
세상 인심은 무서운 것이어서 정부교체와 더불어 따뜻했던 손길이 끊어지고 은행에서도 신규대출을 꺼려 드디어 기업을 처분했다 한다.
창원강업은 86년 11월에 설립됐으니 불과 1년반 만이다. 지극히 작은 규모지만 정경유착의 슬픈 단면이다.
어느 기업이고 막강하게 밀어주면 불꽃같이 일어나고 힘이 끊기면 그냥 폭삭 주저앉는 풍토를 단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어찌 창원강업 뿐이겠는가.
앞으로 엄청난 일들이 벌어질 것이다. 사실 우리 나라 기업들은 크든 작든 부실의 소지들을 많이 안고 있다. 짧은 기간동안 너무 빨리 크느라고 속으로 다질 겨를이 없었기 때문이다. 무리는 더 큰 무리를 낳는 법이어서 무리 속에 자전차 조업을 해왔고 지금도 그렇다. 정상경영의 기준에서 보면 아슬아슬한 곡예비행이다.
그런 곡예비행이 가능했던 것은 은행이라는 안전망에 힘입은바 크다. 이번 창원강업도 은행에서 계속 지원했더라면 별탈 없었을 것이다.
이제까지 지극한 뒷바라지를 해왔던 은행이 갑자기 돌아선 것은 창원강업의 경영외적요인에 더 큰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철강 경기는 여전히 좋다.
사실 우리 나라 기업치고 은행에서 돌아서면 안 주저앉을 기업 매우 드물다.
은행이 뒷방침하고 돌아서는 기준이 신축자재 하다는데 묘미가 있다.
옛날의 창원강업 같이 막강한 배경이 있거나 도저히 수습불능 정도의 빚이 있으면 안심할 수 있다.
담보보다 빚이 엄청나게 많아 기업도산으로 은행에 큰 책임문제가 생길 우려가 있을 땐 눈 딱 감고 지원을 계속한다..
당장 터지지만 않으면 더 큰 손실이 나는 것은 어느 누구도 책임을 안 져도 되기 때문이다. 주인 없는 은행의 편리함이요 비극이다.
이번 창원강업에 대해 은행이 계속 지원을 거절할 수 있었던 것은 그래도 창원강업의 재무구조가 괜찮은 탓이라 볼 수 있다.
말썽 많은 부실기업 정리도 미루다미루다 도저히 더 버틸 수가 없어 터뜨린 것인데 그것이 그 지경에까지 간 것은 은행이 누구의 것도 아닌 구조 때문이다. 은행에 진짜 주인이 있었다면 턱도 없는 일이다.
형식적으론 은행이 민영화된 걸로 되어 있으나 실질적으론 무주공산이다.
누구도 권한이 없고 책임도 없다. 정경유착이 은행을 통해 잘 이뤄지게 되어 있는 구조인 것이다. 부실기업정리 때문에 요즘 뒷말이 많은데 어찌보면 어처구니없는 일들이다. 멀쩡한 기업을 정리한 것도 아니고 도저히 전망이 안보여 정리한 것이지만 다른 부실기업들은 다 놔두고 왜 나만 억울하게 당했느냐는 논리다.
주인 아닌 사람들이 정리했기 때문에 더 원망스러울 것이다. 사실 은행경영자로 보면 중뿔나게 나서서 욕먹을 짓을 안 하려 할 것은 당연하다.
「월급장이에 불과한 내가 왜 모나게 굴어 정을 맞아」하는 분위기다.
은행의 엉거주춤한 책임 소재는 여전한데 기업들의 은행 의존도는 별 변한게 없다.
정권은 바뀌었고 여소야대의 정치판도는 한치 앞을 내다볼 수가 없다.
워낙 비정상적으로 저질러 놓은 일들이 많아 은행들이나 기업들이나 불안할 수밖에 없다.
심한 말로 하면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런 것들이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일단 모두들 움츠러들 것이다.
정부에선 늘 하는 말로 『이젠 자율화시대니 은행에서 알아서 하라』고 하겠지만 정말 알아서 할 수 있을까.
항상 큰 일은 엉거주춤한 상태에서 터지는 법인데 무슨 희한한일이 터질지 정말 아슬아슬하다.
최만석<수석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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