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스, 김영남과 만남 과연 이뤄질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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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방남할 북한 고위급대표단 단장으로 발표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평창 동계올림픽 기간 방남할 북한 고위급대표단 단장으로 발표된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북한이 평창동계올림픽에 김영남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을 단장으로 보내기로 함에 따라 미국 대표단 단장 마이크 펜스 부통령과의 접촉이 초미의 관심사로 떠올랐다.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5일 " (만날 가능성을) 아주 닫아놓을 수도 없다고 생각한다"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정치적 역동성이 좀 발휘되기를 소망한다"고 말했다. 어떻게든 북한과 미국을 연결하는 계기를 만들어보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보인 것이다. 지난 2일 밤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과의 통화에서 문 대통령이 "올림픽을 계기로 한 남북대화 개선의 모멘텀이 향후 지속돼 한반도 평화정착에 기여하기를 희망한다. 펜스 부통령 방한이 이를 위한 중요한 전기가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현재는 '가능성 희박', 출국 직전 트럼프 독대 주목 #김영남 실권없고,메시지 흐려지는 게 문제 #개막식 아닌 비공식 행사 만남, 실무진 만남 가능성도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현재로선 단호하다. 북한 대표단과는 만남 자체를 갖지 않겠다는 것이다.

캐티나 애덤스 국무부 동아태담당 대변인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올림픽 개막 전이나 올림픽 후에도 북한 관리를 만날 계획이 없다"고 말한 것에서 변화가 없다. 오히려 미국의 대북 대응은 날이 갈수록 강경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이 지난달 30일 국정연설에 탈북자 지성호씨를 깜짝 등장시킨 것이나 2일 탈북자 8명을 집단 면담한 것도 북한을 계속 몰아부쳐 고립시키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8일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8일 평창동계올림픽 대표단을 이끌고 방한하는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

펜스 부통령 본인도 2일 "이번 방한의 주요 목적은 '전략적 인내'의 시대는 끝났다는 간단명료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서"라고 잘라 말했다. 이어 4일에는 펜스 부통령의 보좌관이 미 언론에 "미국은 북한의 선전전이 올림픽의 메시지를 납치하도록 방치하지 않을 것"이라고 못을 박았다. 북한이 올림픽을 정치적으로 활용하는 데 넘어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미 정부 관계자는 "북한을 테러대상 지원국으로 재지정하고 국제사회에는 대북 제재와 압박에 동참할 것을 촉구하고 있는 입장에서 어떻게 전세계 미디어 앞에서 북한의 행정수반과 악수를 나누고 대화를 할 수 있겠느냐"며 "미국에겐 북한과 이란이 큰 차이가 없다"고 말했다. 아무리 남북 단일팀이 꾸려지고 남북대화가 무르익고는 있다지만 그것과 핵·미사일 도발을 하고 있는 것에 대한 대응이란 큰 흐름과는 별개라는 설명이다.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마이크 펜스 미국 부통령(왼쪽)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

게다가 펜스 부통령이 일본을 들려 방한하는 만큼 아베 신조 일 총리와 '강경 연합전선'을 구축할 공산도 크다.

김영남 위원장에게 과연 리스크를 감수하면서 만날 정도의 실권이 있느냐는 지적도 있다. 신각수 전 외교부 차관은 "미국은 효과도 없으면서 스타일만 구길 가능성이 있는 만남은 하지 않으려 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현재로선 접촉 가능성이 매우 낮지만 미 일각에선 "자연스럽게 얼굴을 마주치는 것까지 피할 필요는 없다"는 지적도 나온다. 펜스 부통령이 8일 문 대통령과의 회담-만찬, 9일 개막식 참석 외에 정확한 귀국날짜, 일정을 밝히지 않고 있는 점으로 미뤄 "개막식 등 모든 이가 주목하는 곳이 아닌 다른 비공개 일정을 통해 만나려 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런 점에서 5일 오전 11시(한국시간 6일 새벽 1시) 출국 직전 펜스 부통령과 트럼프 대통령의 단독 회담 결과가 주목된다.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일 백악관에 탈북자 8명을 초청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청취하는 모습

트럼프 미 대통령이 지난 2일 백악관에 탈북자 8명을 초청해 북한의 인권문제를 청취하는 모습

물론 북한이 8일 건군절 열병식에서 대대적으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보일 경우 그 가능성은 더욱 낮아질 전망이다. 이와 더불어 펜스 부통령이 아닌 방한 기간 중 '실무급'  비밀접촉 가능성을 점치는 분석도 있다.

위성락 서울대 객원교수는 "북미 간에 잠시 인사를 나눌 수도 있지만 (미국이 지향하는) 진정한 속내와는 차이가 있는 만큼 큰 의미를 부여할 필요까진 없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워싱턴=김현기 특파원, 서울=박유미 기자 lucky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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