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교수의…', 숨막힘 대신 기막힘을 즐겨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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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교수의 은밀한 매력'(감독 이하·제작 엔젤언더그라운드 MK픽쳐스)의 첫장면. 뿔테안경과 긴 생머리, 자줏빛 광택 투피스와 맵시있는 하이힐의 여자가 차가운 바람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굴곡진 몸매를 고스란히 드러내고 있다. 방송사 PD와 조연출은 물론 나들이 나온 예비수녀와 신부까지 그녀에게서 눈길을 떼지 못한다.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사연많은 과거를 암시하는 그녀는 심천대 염색학과의 조은숙 교수(문소리 분).

그 매력에 푹 빠진 남자들이 꼬이고 또 꼬이는 가운데 그녀의 숨기고싶은 과거를 알고있는 만화가 박석규(지진희 분)가 심천대에 교수로 부임한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흐르고, 도도하기 그지없는 포커페이스 조은숙 교수는 물론 그녀에게 목맨 남자들까지 술렁이기 시작한다. 과연 여교수 은숙은 숨기고 싶은 비밀을 지켜갈 수 있을까.

야릇한 제목과 문소리의 전라 정사신 소식에 숨막히는 에로티즘을 기대했다면 한참을 잘못 짚었다. '여교수의 은밀한 매력'은 '숨막힘' 대신 '기막힘'으로 승부하는 발칙한 성인용 블랙코미디다.

영화에는 당돌한 상상력이 넘친다. 감독은 교수이자 환경운동가인 조은숙과 주변 인물의 낯뜨거운 사생활을 하나하나 까발리며 그 허위와 가식에 정면으로 도전한다. 기막힘 끝에 터져나오는 헛웃음이야말로 감독이 노리는 바. 시원한 '하하' 대신 숨죽인 '낄낄'거림을 즐길 수 있다면 이 황당하고 발칙한 코미디도 충분히 즐길 수 있을 것이다.

가장 돋보이는 것은 역시나 문소리가 맡은 주인공 은숙이다. 그녀에게는 매력덩어리보다 모순덩어리라는 설명이 어울린다. 후줄근한 아저씨들과 어울리는 독특한 취향은 작업 성공률을 높이는 비법. 환경운동에 열심이건만 환경파괴에 일조하는 염색이 전공이고 직함은 교수건만 때때로 풍기는 백치미, 몸을 심히 비틀며 던지는 노골적 추파가 그녀의 주무기다.

영화 속 남자들은 그 매력에 빠져 허우적거릴지언정 관객은 결코 매혹되지 않을 그녀는 지금껏 한국영화가 발견하지 못한 종류의 팜므파탈이다.

여교수의 판타지를 뒤집고, 에로틱한 상상을 뒤집고, 배우 문소리와 지진희의 종전 이미지를 뒤집는 이 불온한 코미디는 영화의 호흡도 무시하고 관객의 기대도 무시한 채 발칙한 설정과 진행으로 2시간여를 가득 채운다.

섹스와 죽음이란 '센' 소재를 자유자재로 그러나 대수롭지 않게 처리하는 대범한 신인감독에게 박수를. 믿음직한 배우 문소리에게도 찬사를 보낸다. 문소리는 향후 100년은 출현하지 않을듯한 가식덩어리 연애의 여왕을 그럴싸하게 소화하며 공력을 펼쳐보인다. 16일 개봉. 18세관람가.

<스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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