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즈 칼럼] 교각살우 우려되는 국책은행 공기업 지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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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산업은행과 수출입은행 등 국책은행을 공기업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린다. 국가가 주인인 국책은행을 공기업으로 지정해 엄격하게 관리한다는 데 무슨 이견이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여기에는 좀 미묘한 문제가 숨어있다.

국책은행을 공기업으로 지정하려는 움직임은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올해는 구조조정 부진에 따른 부실 누적과 이에 따른 국민 정서를 앞세워 한층 탄력이 붙은 모양이다. 대우조선 사태로 드러난 대규모 부실에 대한 책임을 물어 그간 허용해 왔던 운영의 자율권을 회수하겠다는 것이다. 국책은행의 손실은 국민의 혈세 투입으로 이어질 수도 있으므로 관리에 만전을 기하여야 함은 물론이다. 그런데도 이제까지 국책은행에 대하여 광범위한 자율권을 허용한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국책은행은 예금을 수취하거나 채권을 발행함으로써 시장에서 민간 금융회사와 경쟁을 통하여 자금을 조달하고 원칙적으로 시장원리에 따라 자금을 공급한다. 이를 무시하고 국책은행을 공기업으로 지정해 현재보다 엄격한 규율을 가하는 경우 비용 절감이나 부실 축소 등 겉으로 드러나는 성과를 기대할 수는 있을 것이지만 경쟁력 상실로 인해 본연의 임무인 정책금융기관으로서의 기능에 장애가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국책은행의 공기업 지정 시 가장 우려되는 문제는 출자 또는 출연을 위하여 반드시 기재부 장관과 사전 협의를 거쳐야 한다는 점이다. 특히 산업은행의 경우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를 주요업무 중 하나로 하고 있는데 실제로 매년 수백 건에 달하는 투자를 하고 있다.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시장 환경에 대응하여 신속하고 유연한 의사결정을 내릴 수 있는 체제를 갖추는 것은 벤처기업에 대한 투자의 성패를 결정짓는 요인이다. 민간 벤처캐피탈이 외면하는 영역에서 국책은행이 중요한 역할을 수행할 필요가 있는 상황에서 공기업 지정은 벤처투자를 사실상 불가능하게 만드는 족쇄가 될 것이다. 나아가 문재인 정부의 경제정책을 구성하는 두 개의 중심축 중 하나인 혁신성장에 장애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

국책은행의 방만한 경영이나 무사 안일한 행태를 견제하기 위한 장치는 필요하다. 그러나 이들을 공기업으로 지정함으로써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정상적인 활동을 어렵게 만들기보다는 현재 작동하고 있는 장치의 실효성을 확보하기 위한 제도 개선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현명한 처방이다. 책임경영체제의 확립, 지배구조 강화, 감사원과 국회의 감시 확대, 인력과 경비에 대한 공기업에 준하는 통제 확대 등이다. 휜 뿔이 마음에 들지 않아 바로잡으려다 소를 잡는 교각살우(矯角殺牛)의 우를 범해서는 안 될 것이다.

박창균 중앙대 경영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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