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에서] “영세업자 대책 먼저 세워놓고, 최저임금 올리는 게 맞지 않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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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식당 그만둘까 싶을 정도로 어려워요.”

현장 점검 차 식당 찾은 장관·수석에 #“카드 수수료 내린다고 해결 안 돼” #업주들, 땜질식 뒷북 행정 거센 비판

19일 오후 서울 중구 신당동에서 백반집을 운영하는 A씨는 한숨을 푹 쉬었다. 테이블 5개 남짓 찌개집에 김영록 농림축산식품부 장관, 홍장표 경제수석이 왔다 간 뒤였다. 이날 김 장관은 홍 수석과 함께 신당동 일대의 설렁탕집 등 음식점 네 곳을 잇따라 방문했다. 외식업 현장점검과 일자리 안정자금 신청 독려를 위해서였다.

약수역에서 청구역 사이 골목에 위치한 식당 주인들은 사업 경력이 6개월~27년까지 다양했다. 이들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어려움을 겪는 식당에 가서는 최저임금 인상 취지와 긍정적 효과를 열심히 설명하고 “카드 수수료를 인하해 경영에 도움이 되도록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직접 서빙과 계산을 하느라 이마에 땀이 맺힌 A씨는 “장관님과 수석님의 설명을 들었지만 카드 수수료나 임대료, 영세업자를 위한 관련 대책을 먼저 내놓은 뒤 최저임금을 인상하는 게 맞지 않나요”라고 꼬집었다. 그는 요즘 남편과 아들이 도와주지 않으면 가게를 유지하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이어 “카드 수수료 인하 등 정부 정책이 나 같은 영세업자에겐 잘 와닿지 않는다”며 “현장의 목소리를 보고 들었다면 피부에 와닿는 대책을 내놨으면 한다”고 말했다.

설렁탕집을 운영하는 김복엽(65)씨는 지난해 말 2호점을 닫은 뒤 매물로 내놓았다. 임대료·인건비 등으로 올해부턴 유지가 어렵다고 판단해서다. 본점도 올해 직원 5명 중 2명을 줄이고 부부가 직접 나와 일하며 버티고 있다. 김씨는 “식당일이 힘들어 사람 구하기도 어려운데 찾아오는 건 외국인들이 대부분이라 난감하다”고 말했다. 김씨 가게의 설렁탕 가격은 10년 전과 똑같은 8000원이다. 그는 “장관과 경제수석이 현장을 방문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면서도 “최저임금이 올랐음에도 정부의 자제 요청으로 음식값을 올리지도 못하고 있다”며 “‘일자리안정기금을 신청해 받아라’고 하는 게 끝이 아니라 대기업 골목상권 침해나 물가, 임대료, 세금 등 복잡한 문제를 세심하게 챙겨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정부의 최저임금 인상에 디테일이 부족했음은 이견이 없다. 이런 현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진작에 들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크다. 지금이라도 엉킨 실타래를 풀기 위해 정부가 적극 나서야 한다. 어느 개그맨의 말처럼 ‘늦었다고 생각할 때는 이미 늦었다’.

여성국 기자 yu.sungk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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