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려줘" 승객 요구 무시해 감금죄 기소된 택시기사 무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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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본 기사와 관계없음. [중앙포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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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운전사와 시비가 붙은 승객이 "요금을 내지 않겠다"며 일방적으로 하차를 요구했을 때 운전사가 이에 응하지 않아도 죄가 되지 않는다는 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창문 열려다 기사와 시비붙어 #하차 요구했지만 목적지 도착 #법원 "감금이라 볼 증거 없다" #신체적 활동 자유 제한 아냐 #

서울중앙지법 형사18단독 이강호 판사는 승객의 중도 하차 요구를 무시하고 11분간 운전해 감금죄로 기소된 택시운전사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고 1일 밝혔다.

지난 3월 어느 금요일 밤, 개인택시를 몰던 A씨는 서울 금천구의 한 아파트 근처에서 50대 승객 B씨를 태웠다. 뒷좌석에 탄 B씨는 "차 안에서 술 냄새가 난다"며 창문을 열었다. A씨가 "추우니 닫아달라"고 한 것이 말다툼의 시작이 됐다. 갑자기 B씨가 "신고하겠다""택시요금을 내지 않겠다"며 당장 내려 달라고 요구했다. 아직 목적지까지 5km 정도가 더 남은 상황이었다. A씨는 B씨의 말을 무시한 채 11분간 더 운전해 B씨가 처음 탑승할 때 말했던 목적지에 내려줬다.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승객의 하차 요구를 무시한 채 차량을 계속 운전해 차량에서 내리지 못하게 하는 것은 감금죄에 해당한다.

하지만 법원은 A씨의 경우는 이와 다르다고 봤다. 이 판사는 "B씨가 차에 탄 후 진행경로 이탈 없이 목적지까지 운전해 안전하게 내려주었고 그 과정에서 B씨를 감금한 특별한 동기나 의도를 엿볼 수 없다"며 A씨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이 판사는 B씨가 중간에 내려달라며 한 이야기들은 "생명 또는 신체 등의 위협에 의한 것이라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중간에 차가 횡단보도 교차로에 신호대기 상태로 서 있던 적도 있었는데 B씨가 진정 내리고자 했다면 그때 문을 열고 내릴 수도 있었다는 것이다.

또 택시 안에서 남편과 통화하던 B씨가 위험에 처했다거나 도움을 청하는 말을 한 적이 없다는 점도 고려됐다. B씨는 목적지 부근에 다다르자 "앞으로 조금 더 가서 내려달라"고 요구한 뒤 돈을 내고 내렸다.

이 판사는 이런 사정을 모두 고려해 "감금의 고의로 피해자의 신체적 활동의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를 했다고 인정하기에 부족하다"고 판단했다. 이 판결은 검찰이 항소하지 않아 확정됐다.

문현경 기자 moon.h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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