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사 때 누나·여동생 불러라"…군 인권센터,공군 부대 갑질 주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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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 모 전투비행단 소속 부대의 한 간부가 상습적으로 부하 병사들에게 가혹 행위를 했고 부대는 이를 사실상 방치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군인권센터는 "강원도 강릉에 위치한 공군 모 부대 소속 A상사가 지난해 말부터 지난 4월까지 자신의 부하 병사들에게 구타·성희롱·갑(甲)질 등 가혹 행위를 일삼았지만, 부대 지휘관들이 이를 쉬쉬했다"고 26일 주장했다. 센터는 "부대에서는 일이 처리되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한 피해자들이 센터에서 피해 상담을 받았다"며 이같이 밝혔다.

센터에 따르면 해당 부대의 정비반장인 A상사는 정비반 소속 병사 5명의 뺨을 때리거나, 장난이라며 얼굴을 때리는 식의 지속적인 구타를 했다고 한다. 또 한 병사에게 "얼굴에 난 털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강제로 털을 뽑고, 병사들에게 "XX새끼" 등의 욕설을 해왔다고 한다.

이뿐만 아니라 A상사는 지난 2월과 3월에 부대로 부모를 초청하는 행사를 앞두고 병사들에게 형제 관계를 물은 뒤 여동생이나 누나를 꼭 오게끔 하라는 등의 발언을 했다는 게 센터의 주장이다. 병사들에게 사적인 심부름을 시키거나, 자신이 해야 할 임무를 임의로 병사에게 전가했다는 주장도 나왔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연합뉴스]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연합뉴스]

피해 병사들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 5월과 7월에 부대장인 B대위에게 2차례에 걸쳐 이런 행위를 신고했지만, 부대장은 "또다시 그러면 가중처벌하겠다"며 아무런 조치를 하지 않았다고 한다. 그 사이 이 사실을 부대장으로부터 전해 들은 A상사의 보복성 가혹행위도 있었다는 게 이들의 주장이다. 이후 피해 병사들은 군 내부망에 있는 '단장과의 대화'를 통해 재차 신고했고 해당 전투비행단장인 C준장이 감찰과장을 통해 사실관계를 조사토록 했다.

조사 결과 일부 피해 사실이 확인돼 C준장은 A상사에 대해 주의 조치를 했다. 그러나 센터에 따르면 이후에도 피해 병사들은 A상사와 계속 한 공간에서 근무하며 두려움을 느꼈다고 한다. 피해 병사들은 지난 9월 전역자를 통해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했다.

센터 관계자는 "인권위 신고 당시 C준장은 'A상사에 대한 주의 조치 후 3개월간 유예기간을 두고 지켜보고 있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군내 구타·가혹 행위 사건에서는 가해자 처벌의 유예기간 두고 있지 않다. 사실상 방치에 가까웠다는 얘기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피해 병사들이 인권위에 제출할 확인서를 작성하거나 감찰실에서 진술할 때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았다. 이 때문에 가해자의 보복이 지속하고 있다"고도 했다.

임태훈(41) 군인권센터 소장은 "A상사의 행위는 구타, 가혹 행위, 가족 성희롱, 일상적 갑질 등 병영 내에서 발생할 수 있는 부조리를 망라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8일 군 제도의 혁신과 장병 인권, 복무 여건의 획기적 개선을 주문했지만, 해당 전투비행단은 병영 적폐의 총집합을 보여주고 있다. 책임 있는 자들의 엄중한 처벌이 요구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공군 관계자는 "이 사안을 엄중하게 보고 있다. 현재 공군 본부 감찰실에서 사실관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조사에 들어간 상태다. 사적인 심부름을 시켰다는 등의 행위는 이미 사실로 드러났다. 관련 위법사항이 있을 때는 규정과 절차에 따라 엄중하게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하준호 기자 ha.junho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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