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난용품 시계에 담았다 … 경기도가 만든 ‘반값 키트’ 인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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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출시한 라이프 클락. [사진 경기도주식회사]

지난 8월 출시한 라이프 클락. [사진 경기도주식회사]

가로·세로 21㎝에 4.5㎝ 높이. 겉모습은 영락없는 시계다. 커버를 열고 건전지를 넣자 ‘똑딱똑딱’ 시침과 분침이 움직인다. 인테리어용 벽걸이 시계로도 손색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내부는 다르다.

민관 출자사가 ‘라이프 클락’ 개발 #조명봉 등 구비, 평소엔 시계로 사용 #포항 지진 겪은 후 판매 급속증가 #출시 4개월도 안 돼 1만개 돌파

시야 확보와 구조 요청에 도움을 주는 조명봉과 체온을 유지하도록 도와주는 보온포, 구조 요청과 위치를 알리는 호루라기·깃발, 응급처치를 위한 압박붕대가 들어 있다. 경기도주식회사가 지난 8월 선보인 재난 안전키트인 ‘라이프 클락’이다. 경북 포항 지진 이후 판매량이 급증하면서 출시 4개월도 안 돼 1만 개가 팔렸다.

김은아(44·여) 경기도주식회사 대표는 “무겁고 구석에 방치하는 재난 안전용품이 아닌, 눈에 보이는 곳에 두고 재난 시 바로 가지고 나올 수 있는 재난 안전용품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라이프 클락’을 만들었다”고 설명했다.

시계 뚜껑을 열 면 재난 대비 용품이 들어 있다. [사진 경기도주식회사]

시계 뚜껑을 열 면 재난 대비 용품이 들어 있다. [사진 경기도주식회사]

경기도주식회사는 경기도와 지역 경제단체들이 출자해 만든 회사다. 제품과 기술력은 뛰어나지만 디자인과 마케팅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을 발굴해 제품 기획·생산·홍보 등을 도와준다. ‘라이프 클락’처럼 독자적으로 제품을 기획하기도 한다. 개발 과정은 쉽지 않았다. 재해·재난 안전 전문가는 물론 소방, 재난 용품 개발자, 의사 등 10여 명의 전문가를 만나 자문을 구하고 제작하는 데 7~8개월이 걸렸다. 전문가들이 제안한 물품을 모두 담으려면 부피가 커질 수밖에 없었다. 김 대표는 “당시 ‘어떤 것을 추가할까’가 아니라 ‘빼야 할지’를 고민했다”며 “재난 대비용으로 많이 알려진 생존(재난)가방은 평균 무게가 5㎏ 이상이라 어린이나 노인들이 사용하기엔 불편하고 가격도 비싸기 때문에 가볍고 실용적이면서 저렴한 제품을 만들기로 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과 상의해 물품을 골랐다. 체온 유지가 중요한 노약자와 부상을 당한 환자 등을 위해 보온포를 넣고 아파트 거주 비율이 높은 국내 상황을 반영해 구조 깃발도 만들었다.

12시간 빛나는 조명봉과 응급치료를 위한 압박붕대 등도 포함했다. 모두 일회용품이 아닌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하다. 특히 1.07㎏으로 가벼워 재난 시 쉽게 들고나올 수 있다. 아이들이나 노약자도 쉽게 사용할 수 있도록 사진 매뉴얼도 만들었다. 김 대표는 “대체할 수 있는 물품은 과감하게 버렸다”고 말했다. 그래서 가격도 기존 생존배낭(10만원 이상)의 절반 이하 가격(3만9000원)으로 책정할 수 있었다고 한다.

평창 겨울올림픽 메달을 디자인한 이석우 SWNA 대표가 디자인에 참여했다. 집에 모셔두는 재난키트가 아닌 자주 보는 ‘시계’ 모양으로 만들자고 제안해 반영했다. 도내 18개 중소 제조업체가 보온포 등을 만들었다. 김 대표는 “도내 중소기업들과 협력해 재난 상황별 키트 개발에도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성남=최모란 기자 m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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