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설 마친 후 ‘엄지 척’...대중 정치인 트럼프, 한국 국회서도 제스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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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과 악수하며 퇴장할 때 민중당 김종훈(앞), 윤종오 의원이 반전,평화 메시지가 담긴 팻말을 들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8일 오전 국회 본회의장에서 국회연설을 마친 뒤 의원들과 악수하며 퇴장할 때 민중당 김종훈(앞), 윤종오 의원이 반전,평화 메시지가 담긴 팻말을 들고 있다.

“우리는 강하고 방심하지 않습니다. 눈은 북한에 고정돼 있고, 가슴은 모든 한국인들이 자유롭게 살 그날을 위해 기도할 것입니다.”

 8일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자 294명의 의원들이 모두 일어나 기립박수를 보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좌우를 둘러보며 자신감 넘치는 표정으로 엄지손가락을 들어올렸다. 박수를 치며 고개를 끄덕였고 검지 손가락을 들어 왼쪽에서 오른쪽까지 원을 그리며 가리키기도 했다. 홈런을 친 야구선수를 닮은 모양새였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려한 제스쳐로 한국 국회 연설을 장식했다. 연설 중간 “세계 4대 골프선수들이 모두 한국 출신”이라는 말에 의원들의 박수가 나오자 두 손을 위로 올리며 더 큰 박수를 유도하기도 했다. 미 대선 때 대중들을 상대로 유세전을 펼치며 구름처럼 대중을 모았던 트럼프가 한국에서도 청중과의 호흡을 보여준 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의 국회연설은 당초 20여 분일 것이란 예상을 깨고 11시 24분부터 11시 59분까지 35분동안 이뤄졌다. 박수는 마지막 기립박수를 포함해 총 18번이 나왔다. 24년 전인 1993년 클린턴 대통령은 22분 간 연설을 하고 7번의 박수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한국의 상황을 구체적으로 묘사했다. 그는 “한국 경제 규모는 1960년과 비교해 350배에 이르고… 한국 작가들은 연간 약 4만 권의 책을 저술하고 있다. 한국 음악가들은 전 세계 콘서트장을 메우고 있다”며 “한국이 너무나 성공적인 국가로 성장했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서울에서는 63빌딩이나 롯데월드 타워 같은 멋진 건축물들이 하늘을 수놓고 있다. 대단한 일이라고 생각한다”고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골프광이라는 것을 증명이라도 하듯 이날 국회 연설에서 골프를 소재로 한국의 번영을 재치있게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올해 US오픈 골프 대회가 뉴저지에 있는 트럼프 골프 클럽에서 열렸다. 여기서 승리한 선수가 한국의 훌륭한 프로골퍼인 박성현씨"라고 말해 의원들의 웃음과 큰 박수를 이끌어냈다. 전날 청와대 국회 만찬에 참석한 국회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사위이자 백악관 선임 고문인 재러드 쿠쉬너가 '트럼프 대통령은 2 오버파를 치는 실력자'라고 하더라"고 전했다.

 클린턴 대통령은 24년 전 국회 연설에서 “1992년 올림픽 바르셀로나 마지막 언덕을 이겨내고 금메달 딴 황영조 선수의 모습을 기억한다. 그의 정열과 인내는 오랜 고난을 이겨내고 번영을 이룬 한국인의 마음을 사로잡았다”고 말해 기립박수를 받았다.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동안 여야 의원들의 반응은 달랐다. 자유한국당은 트럼프 대통령이 “변명의 시대는 끝났다. 이제는 힘의 시대입니다. 평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강력해야 한다”고 말하는 대목에서 그의 말을 끊고 갑자기 박수를 치기 시작했다. 이때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박수를 치지 않았다. 반대로 민주당 의원들은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는 당신이 지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더 나은 미래를 위한 길을 제공할 준비가 돼 있다. 이것의 출발은 탄도미사일 개발을 멈추고 완전하고 검증 가능한 총체적인 비핵화”라고 말했을 때 가장 큰 소리로 박수를 보냈다.

 정의당 의원들은 트럼프 연설 내내 한 번도 박수를 치지 않았고 민중당 김종훈, 윤종오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연설이 끝나고 국회의사당을 빠져나갈 때 “NO WAR! WE WANT PEACE!"라고 적힌 피켓을 가슴에 들고 항의 표시를 하기도 했다. 앞서 대한애국당 조원진 의원은 연설 시작 전 ‘한미동맹 강화’, ‘죄없는 박근혜 대통령 즉각 석방하라’는 피켓을 들고 의사당 안으로 들어왔다 국회 직원들에 의해 밖으로 끌려나갔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에 앞서 방명록에 “‘한국’과 함께여서 대단히 영광이다. 감사하다”(A great honor to be with you, “Korea”. Thank you)라고 썼다. Korea라는 단어에 특별히 따옴표(“”)를 붙였다. 국회 고위 관계자는 “트럼프 대통령이 멜라니아가 서명한 다음에 다시 펜을 달라고 하더니 Korea에 따옴표를 써 넣었다”고 전했다.

한편 국회 연설을 마치고 나가던 트럼프 대통령과 맨 처음 악수를 한 것은 바른정당 지상욱 의원이었다. 지 의원은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를 하며 10초간 대화를 하는 모습이 포착됐다. 지 의원은 기자와의 통화에서 “트럼프 대통령에게 ‘로켓베이비(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를 거물로 만들지 마세요. 우리 함께 그를 날려버립시다.(Mr. President, please do not make the rocket baby a big man. Just blow him away Together)’라고 말했다”고 전했다. 지 의원이 김 위원장을 두고 ‘로켓베이비(Rocket baby)’라고 지칭한 것은 트럼프 미 대통령이 작명한 ‘로켓맨’(Rocket Man)이라는 별명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한다.

트럼프 대통령은 국회 연설을 마친 뒤 현충원으로 이동해 순국선열에 헌화하고 참배했다. 그는 “여기 잠든 영웅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당신들의 희생은 언제나 기억될 것이다”고 적었다.

박성훈ㆍ유성운 기자 park.seongh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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