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라운드 연출가', '경비견 박지성에게 꽁꽁 묶였던' 피를로, 현역 은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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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 축구전설 피를로가 6일 현역 은퇴했다. [사진 피를로 인스타그램]

이탈리아 축구전설 피를로가 6일 현역 은퇴했다. [사진 피를로 인스타그램]

'그라운드 연출가' 안드레아 피를로(38·뉴욕시티)가 현역 은퇴했다.

피를로는 6일(현지시간) 자신의 SNS를 통해 은퇴를 발표했다. 영국 BBC 등 외국 언론들도 피를로의 은퇴 소식을 전했다.

앞서 지난달 오른쪽 무릎 연골 손상을 이유로 은퇴의사를 드러냈던 피를로는 이날 현역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피를로는 미국 뉴욕에서 콜롬비아 크루와 미국 메이저리그사커 동부콘퍼런스 플레이오프에서 2-0으로 이겼지만 1·2차전 합계 3-4로 결승행이 좌절됐다. 2015년 뉴욕시티로 이적한 피를로와 소속팀의 계약기간은 올해 12월31일까지다.

피를로는 "뉴욕시티 삶뿐만 아니라 축구선수로서 긴 여행은 모두 끝났다"며 "지금까지 나와 함께 뛴 모든 동료들과 코치진에게 영광을 돌린다. 전세계 많은 팬들 역시 내 마음 속에 영원히 남아있을 것"이라고 은퇴 소감을 밝혔다.

피를로는 그라운드의 연출가라 불렸다. 연출가처럼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경기를 술술 풀어간다는 의미다. [사진 피를로 인스타그램]

피를로는 그라운드의 연출가라 불렸다. 연출가처럼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경기를 술술 풀어간다는 의미다. [사진 피를로 인스타그램]

피를로의 별명은 '레지스타(Regista·이탈리아어로 연출가)'다. 연출가처럼 잘 짜여진 각본에 따라 경기를 술술 풀어간다는 의미다. 축구에서는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서 경기 전체를 조율하는 선수를 지칭한다.

1979년 이탈리아 브레시아에서 태어난 피를로는 16세 때 브레시아 소속으로 이탈리아 세리에A에 데뷔했다. 피를로는 원래 공격형 미드필더였다. 유럽 21세 이하 선수권에서 득점왕에 올랐다. 하지만 2001년 AC밀란(이탈리아) 시절 주전경쟁에서 밀리자 포지션을 변경했다.

수비형 미드필더 위치에 자리를 잡은 뒤 수비를 할 때는 압박에 가담하고, 공격을 할 때는 볼을 뿌려주는 '딥 라잉 플레이메이커(후방 조율사)'로 변신해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다. 피를로는 자서전 『나는 생각한다, 고로 플레이한다』에서 "나는 그라운드의 집시다. 나는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훼손되지 않은 공간을 찾아다니는 미드필더" 라고 적었다.

피를로는 2006년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사진 피를로 인스타그램]

피를로는 2006년 이탈리아의 월드컵 우승을 이끌었다. [사진 피를로 인스타그램]

피를로는 AC밀란 소속으로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두 차례 이끌었고, 유벤투스를 2011년부터 4시즌 연속 이탈리아 세리에A 정상에 올렸다. 이탈리아 국가대표로 114경기를 뛰면서 2006년 독일월드컵 우승과 유로2012 준우승도 일궈냈다.

2006년 월드컵 독일과 4강전 당시 후반 종료 직전 결승골을 이끌어 낸 피를로의 '노 룩 패스(No look pass)'는 두고두고 회자된다. 유벤투스 골키퍼 잔루이지 부폰은 "피를로의 플레이를 본 순간 사람이 아닌 신(神)의 플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의 축구기술은 이 세상을 넘어선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피를로 자서전. 그는 자서전에 AC밀란 시절 박지성에게 꽁꽁 묶였던 이야기도 적었다. [사진 피를로 인스타그램]

피를로 자서전. 그는 자서전에 AC밀란 시절 박지성에게 꽁꽁 묶였던 이야기도 적었다. [사진 피를로 인스타그램]

'완벽함을 추구하는 남자' 피를로가 AC밀란 소속이던 2009-10시즌 UEFA 챔피언스리그 16강전에서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잉글랜드) 박지성(36)에게 꽁꽁 묶인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피를로는 "알렉스 퍼거슨 맨유 감독은 박지성을 풀어 날 그림자처럼 뒤쫓도록 했다. 박지성은 한국 축구의 핵(核) 같은 선수다"며 "박지성은 몸을 던져 날 막았고, 겁을 주려고 계속 내 등에 손을 갖다 댔다. 박지성은 유명 선수였음에도 경비견 역할을 마다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피를로는 냉정해서 더 무섭다. 그는 자서전에 "압박감을 전혀 느끼지 않는다. 2006년 7월 9일 일요일 오후에 나는 베를린에서 낮잠을 자고 플레이스테이션으로 게임을 했다. 그리고 그 날 저녁 그라운드에 나가 월드컵 우승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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