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보수 모두 공감할 ‘통일헌장’ 만들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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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이명박·박근혜 정부는 북한 정권교체나 붕괴 같은 미망(迷妄)에 빠져있었습니다.”

김덕룡 민주평통 수석부의장 #‘독재정권 산물’ 생각에 한때 고사 #일관성 있는 통일정책 필요해 수락 #대북정책 둘러싼 갈등부터 풀어야

이달 초 출범한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제18기 김덕룡(76·사진) 수석부의장은 보수 정부 9년 동안의 대북정책에 대한 비판으로 말문을 열었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은 지난 정권이 일탈했던 부분을 제자리로 돌려놓기 위한 과정”이라고 말했다. 김 수석부의장은 18일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무엇보다 대북정책을 둘러싼 국민 갈등부터 풀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 통일헌장 제정을 추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전북 익산 출신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상도동계 좌장이자 5선 의원 출신인 김 수석부의장은 민화협 대표상임의장 등을 지냈고, 세계한인상공인총연합회 이사장과 (사)김영삼민주센터 이사장을 맡고 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수석부의장직을 한때 고사했다고 들었다.
“민주평통이 독재정권의 산물인데다, 관변단체란 생각을 의원 활동 시기부터 했다. 반독재·민주화 운동을 해온 내가 맡는 건 문제라고 봤다. 하지만 평통 의장인 문재인 대통령이 ‘그런 비판적 인식으로 새 민주평통 정립에 힘써달라’고 권유해 수락했다.”
통일헌장은 박근혜 정부 통일준비위에서도 추진했지만 불발됐다. 유신시절의 국민교육헌장 때문에 국민적 거부감도 있다.
“오래 전부터 통일헌장 필요성을 주장해왔다. 정권 변동에 상관없는 일관성 있는 통일정책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도 ‘통일국민협약’을 말씀하셨다. 명명을 어떻게 하든 18기 민주평통에서 공감대를 도출하겠다.”
북한의 핵 실험과 미사일 도발로 남북관계가 최악이다.
“캄캄한 밤이다. 하지만 밤이 깊으면 새벽이 곧 온다. 이럴 때일수록 절망 말자. 한 방에 해결할 묘수는 없다. 한 걸음씩 통일의 길에 접근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북한 김정은의 도발행보를 어떻게 보나.
“후계자 시절 제왕학 교육을 받았겠지만 세월이 인간을 성장시키는 게 기본이다. 30대 나이에 할 수 있는 일이 제한적이지 않을까. 충성경쟁과 공포정치 때문에 합리적 결정을 할 수 없는 게 큰 리스크다.”
젊은 세대 사이에 과다한 통일비용 등을 내세운 통일무용론이 퍼진다.
“그냥 두 개 국가로 존재하며 서로 왕래·협력하는 수준이면 충분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그런 생각은 절대 안된다. 반통일론을 억제하고 제압하는 운동을 민주평통 중심으로 펼쳐나가겠다.”
자문위원 중 해외 위원 비중을 늘린 게 눈길을 끈다. 복안이 있는 건가.
“17기에 3278명에서 이번엔 3630명으로 350여 명 늘렸다. 통일은 남북의 힘만으로 되는 게 아니다. 우리가 주도하겠지만 미·일·중·러 4강의 협력이 필요하다. 이들 국가를 중심으로 해외동포의 통일 공공외교에서 평통이 중심에 섰으면 하는 바람이다. 민화협 해외조직 구축과 세계한상(韓商)조직에 몸담았던 경험도 활용하겠다.”
개헌 논의와 관련 민주평통의 폐지나 위상 변화를 우려하는 시각도 있다.
“민주평통은 헌법 92조에 근거한 대통령 자문기구다. 국내 228개 시·군·구와 해외 122개국에 1만9710명의 조직을 두고 있다. 국가의 큰 목표인 평화통일을 위한 조직은 어떤 형태로든 있어야 한다.”

글=이영종 통일전문기자, 정영교 통일문화연구소 연구원, 사진=신인섭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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