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형량, 웹에 물어보세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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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전과가 없는 A씨가 승용차를 운전하다 횡단보도에서 무단횡단하는 보행자를 치어 전치 6주의 골절상을 입혔다면 어떤 처벌을 받게 될까. 예전에는 변호사를 찾아가야만 어느정도 답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집에서도 인터넷을 통해 교통사고의 여러 정황을 입력하면 예상 형량을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최근 공개된 ‘컴퓨터 양형 시스템’을 통해서다.

김성인 고대 교수 양형 시스템 개발 #사고 정황 입력하면 예상 형량 제시

피해자 상해 정도, 법규 위반 종류, 합의·음주·도주·전과 여부, 피의자 과실 등 88가지 요소 중 자신의 상황에 맞게 입력하면 양형위원회 양형기준과 기존 판례 등을 참조해 예상 형량과 집행유예 여부 등을 제시해준다. A씨의 경우 ‘피고인을 징역 7.6개월에 처할 것을 권장합니다…또는 피고인을 벌금 860만원에 처할 것을 권장합니다’는 답이 나왔다.

이 시스템을 개발한 주인공은 김성인(71·사진) 고려대 산업경영공학부 명예교수다. 그는 지난달 말 이같은 서비스(www.kimscatscoms.com)를 온라인에 무료 공개했다. 살인·횡령 등 다른 범죄에 대해서도 순차적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예정이다.

김 교수는 “판결이라는 게 단순 계산으로 나올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양형이 객관화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 있는 성과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시스템 개발은 김 교수가 지난 45년 동안 ‘형량 정립’(비슷한 사안에 비슷한 형량) 연구에 매달렸던 결과다. 그는 컴퓨터란 단어조차 생소했던 1972년부터 아버지 김윤행 전 대법관(92년 작고)과 함께 컴퓨터를 활용한 범죄 양형 시스템 개발을 시작했다. 김 교수는 “형량정립은 당시 법조계가 당면한 문제 중 하나였다. 법관에 따라 같은 사안이어도 판결이 심하게 들쭉날쭉할 때가 많았다”고 설명했다.

서울대 응용수학과 4학년에 재학 중이었던 그는 아버지에게 “컴퓨터를 이용하면 객관적이고 일관적인 형량을 결정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제안했다. 먼저 교통사고를 모델로 한 프로그램을 개발했지만 법조계 반응이 부정적이어서 실용화 하지 못했다.

하지만 김 교수는 연구를 이어갔고 3년 전 KAIST 인공지능 교수인 장남, 변호사인 차남과 함께 형량을 결정하는 알고리즘을 개발해 특허도 등록했다. 3대에 걸쳐 프로그램을 완성한 셈이다.

김 교수는 “이런 프로그램을 이용하면 판·검사, 변호사, 경찰 등이 일손을 덜고, 비전문가도 형량을 예상하는 참고자료로 쓸 수 있다”고 말했다.

전민희 기자 jeon.minhee@joongang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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