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가 사상 최대인데, 달러가치 올들어 9% 하락... 4가지 이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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곤두박질 달러 가치, 왜? 

트럼프 대통령 당선 직후 오른 달러, 취임 후 줄곧 내리막 #경기 부양책 지지부진,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신뢰 상실 #"유럽 경제 회복세 본격화하면 달러 추가 하락 가능성" vs #"유로존보다 미국 경제 성장 속도 빨라 달러 반등 가능성"

물건과 마찬가지로, 통화도 시장에서 거래되는 수요에 따라 가격이 결정된다. 통화의 가격, 즉 돈의 값이 환율이다. 일반적으로 강한 통화는 강한 경제를 의미한다. 하지만 최근 미국 달러의 행보는 좀 다르다. 다우존스산업평균지수가 사상 처음으로 2만2000선을 돌파하는 등 미국 경제에 파란불이 켜졌지만 달러 가치는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한 은행원이 100달러 짜리 미국 지폐를 세고 있다. 달러화는 올해 들어 9% 하락했다. [연합뉴스]

한 은행원이 100달러 짜리 미국 지폐를 세고 있다. 달러화는 올해 들어 9% 하락했다. [연합뉴스]

올해 들어 미국 달러 가치의 하락세는 뚜렷하다. 9일 달러지수는 93.628로, 지난해 5월(달러지수 92.626) 이후 15개월 사이 가장 낮은 수준이다. 올해 들어 최고치(103.210)였던 1월 3일보다 9.2% 떨어졌다. 달러지수는 유로화를 포함한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다. 숫자가 높을수록 강세를, 낮을수록 약세를 나타낸다.

달러 가치가 올해 1월 이후 급락하고 있다. 유로화를 포함한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지수는 1월 3일 103.210에서 8월 9일 93.628로 떨어졌다. 7개월 만에 9.2% 하락했다. [블룸버그] 

달러 가치가 올해 1월 이후 급락하고 있다. 유로화를 포함한 6개 주요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내는 지표인 달러지수는 1월 3일 103.210에서 8월 9일 93.628로 떨어졌다. 7개월 만에 9.2% 하락했다. [블룸버그] 

주요 10개국 통화를 기준으로 산출하는 블룸버그 달러지수도 마찬가지다. 올해 들어서만 8.99% 하락했다. 블룸버그 달러지수는 지난 1월 1277.53에서 9일 1162.66으로 내려앉았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들어서만 두 차례 금리를 인상하고, 연말께 추가 금리 인상까지 전망되는 점을 고려하면 이례적인 달러 약세다. 이토록 달러가 맥을 못 추는 이유는 뭘까.

① 미 국내 정치적 불확실성

뉴욕타임스ㆍ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이 꼽는 가장 큰 이유는 트럼프 행정부의 능력에 대한 시장의 신뢰가 낮다는 점이다. 애초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달러 가치는 큰 폭으로 올랐다. 트럼프가 약속한 인프라 투자와 세금 감면, 규제 완화 등 시장 친화적인 조치들이 경제 성장을 이끌 것이란 기대감이 반영돼서다.

 달러 강세는 오래가지 않았다. 트럼프가 추진한 개혁 조치들이 잇따라 불발되면서 달러 값은 방향을 틀었다. 현재 달러 가치는 연초 대비 8~9% 떨어졌다.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달러 가치는 가파르게 올랐다. 세제 개혁과 규제 완화,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하지만 정책 추진이 지지부진하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달러화는 줄곧 내리막 길을 달리고 있다. [UPI=연합뉴스]

지난해 말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선된 직후 달러 가치는 가파르게 올랐다. 세제 개혁과 규제 완화, 경기 부양책에 대한 기대감이 반영됐다. 하지만 정책 추진이 지지부진하면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다. 대통령에 취임한 이후 달러화는 줄곧 내리막 길을 달리고 있다. [UPI=연합뉴스]

월가에서는 “워싱턴의 정치 드라마 때문에 달러가 두들겨 맞고 있다”(FXTM의 루크맨 오투누가 애널리스트)고 평가했다. “성장을 위한 부양책을 추진하는 미국 행정부의 능력에 대한 신뢰(confidence)가 바닥을 찍었다”(소시에테제네랄의 키트 죽스 전략분석가)는 지적도 있다. 독일 경제전문지 한델스블라트는 “트럼프가 달러를 약화시키고 있다”는 제목의 기사를 게재했다.

실제 워싱턴의 정치적 사건이 달러 하락에 직접적인 영향을 줬다. 지난 3일(현지시간) 로버트 뮬러 특별검사가 러시아 스캔들에 대한 광범위한 수사에 들어가자 달러 가치는 바로 하락했다. 게리 콘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의장이 4일 “올해 안에 세제 개혁을 완수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한다(confident)”고 말하며 반전을 시도했지만 시장의 반응은 신통치 않았다.

달러 뭉치

달러 뭉치

② 연내 금리 인상도 불투명

블룸버그통신은 Fed가 올해 안에 기준금리를 인상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의구심도 달러 하락에 한 몫하고 있다고 전했다. Fed는 지난달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회의 이후 성명을 통해 연내 금리 인상 가능성을 시사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 지표들이 경기의 불씨를 꺼트릴 가능성을 보이면서 Fed가 금리를 올릴 것이라고 확신하지 못하는 분위기가 퍼지고 있다.

미국 공급관리자협회(ISM)의 비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6월 57.4에서 7월 53.9로 떨어졌다. 지난해 10월 이후 가장 낮은 수치다. 미국 상무부가 발표한 6월 건설 부문 지출은 전월보다 1.3% 떨어져 지난해 9월 이후 최저치를 기록했다. 로이터통신이 집계한 시장 전망치인 ‘0.4% 증가’와 반대되는 결과다. Fed는 물가 상승률 목표치가 2%에 미달하는 상황에서 금리를 인상하면 자칫 경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우려한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Fed가 연말께 추가로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경우 달러 가치는 계속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AP=연합뉴스]

재닛 옐런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 Fed가 연말께 추가로 금리를 올리지 않을 경우 달러 가치는 계속 하락할 가능성이 있다. [AP=연합뉴스]

③ 유럽 경제 회복하면서 유로화 강세

파이낸셜타임스에 따르면 지난해 여름 이후 최근까지 달러 가치는 하락했지만, 넓게 보면 지난 6년간 달러 지수는 28% 증가했다. 세계 경제가 침체된 가운데 미국 경제가 2011년 가장 먼저 회복세를 보이면서 달러의 상승 가도가 열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최근 유럽 경제가 회복의 신호탄을 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 달러가 본격적인 약세로 돌아선 것이다. 달러지수에서 유로화가 차지하는 비중은 58%로 가장 크다. 이에 힘입어 유로화 가치는 2년 반만에 최고치까지 올랐다. 로이터통신은 “유럽 경제 지표가 호조를 나타내는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이 긴축에 나서면 유로 강세가 지속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유로가 강세가 되자 달러는 약세로 돌아선 것이다.

④ 트럼프 “약한 달러 원해요”

역대 미국 대통령은 달러 가치에 대해 언급하지 않는 걸 불문률로 삼았다. 금기를 깨는 것을 즐기는 트럼프 대통령답게 환율에 대한 불문율도 파괴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4월 월스트리트저널과의 인터뷰에서 “너무 강하지 않은 달러가 좋다”며 “강한 달러는 듣기 좋다는 점 외에는 나쁜 일을 더 많이 만든다”고 말했다.

앞서 지난 2월 23일에도 미국의 수출 기업 캐터필러를 방문한 자리에서 공개적으로 “미국 기업의 해외 비즈니스를 돕기 위해 달러 가치를 낮게 유지하기를 원한다”고 말했다.

물론 트럼프 대통령이 원한다고 달러 가치가 바로 떨어지지는 않는다. 다만, 정책 변화를 감지한 월가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한 예가 재닛 옐런 Fed 의장에 대한 트럼프의 평가가 바뀐 점이다. 대선 운동 기간 중 옐런 의장에 대해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고 비난했던 트럼프는 최근 “그가 일을 잘 하고 있다”고 말했다. CNBC방송은 “Fed 의장은 금리의 향방을 결정하고, 금리는 일반적으로 달러의 궤적에 영향을 준다”며 대통령의 말이 미치는 영향을 설명했다.

달러

달러

달러 가치, 앞으로는

향후 달러가 장기적인 약세장에 진입할 가능성이 있다는 의견과 연말에는 회복할 것이라는 의견이 나뉜다. 크레디스위스는 9일(현지시간) 앞으로 달러 가치가 유로화와 엔화 대비 각각 3% 가량 하락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놨다. 달러지수는 2.5% 추가 하락을 예상했다. 위에서 언급한 달러 약세 요인이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반면에 웰스파고은행은 조만간 달러가 반등해 올 연말께는 강세를 나타낼 것이라고 분석했다. 7일(현지시간) 웰스파고의 사미르 사마나 전략분석가는 “유로존과의 격차가 좁혀졌지만 여전히 미국의 경제 회복 속도가 유로존보다 빠르다”며 “달러에 대한 매도세가 지나친 면이 있었기 때문에 달러가 반등할 것”으로 내다봤다.

박현영 기자 hypar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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