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이후 격변정국(1)|양김의 책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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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야권을 지지했던 사람들은 참으로 허탈하게 됐다.
양김씨의 단일화실패로 인해 선거가 4자 대결구도로 짜일때 부터 우려했던 현상이 표를 통해 현실로 나타났다.
군정종식이라는 명제에 뜻은 같이 하면서도 분파성을 극복치 못해 결과적으로 많은 지지를 얻고도 현실을 변화시키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연출하고 말았다.
민주·평민양당은 이 정권을 반대하는 60여%에 달하는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고도 정권을 바꾸지 못한 책임을 면하기 어렵게 됐다.
이에따른 국민들의 당혹감과 배신감은 어떤 형태로든 현실 정치로 투영될것이 분명하며 이 과정에서 야권의 재편이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장은 이러한 책임론에 앞서 야권의 부정선거 시비가 정국을 휘몰아칠것 같다.
민주·평민당은 투개표과정에서 수백건에 달하는 부정사례를 모아 놓고 이번 선거가 원천적으로 부정선거이기 때문에 선거결과에 승복치 않겠다는 입장이다.
부정선거에 대한 야당의 저항이 어떤 방향으로 번져갈지는 아직 미지수다.
평민당의 김대중후보는 이번 선거결과를 전면거부하고 투쟁을 확산시켜 단기간내에 승부를 걸듯하며, 이에 비해 민주당의 김영삼후보는 이보다는 좀더 유연한 자세로 장기전의 채비를 갖출 것으로 보여진다.
문제는 이러한 야당의 저항에 국민이 과연 얼마나 호응해 주느냐다.
야당의 투쟁에 만일 국민의 지지가 있을 경우 양당은 이 명분을 업고 현재 양김씨를 정점으로 한 당구조를 당분간 유지시켜 나가려 할것이다.
이 투쟁과정에서 민주· 평민당은 물론 공화당까지 연합전선을 형성할 수도 있으나 선거운동과정에서 생긴 민주·평민당간의 감정적 앙금 때문에 연대가 쉽사리 이루어질지는 미지수다.
또 곧이어 치러야 하는 총선도 현재의 야당구조를 당분간 불가피하게 유지시켜주는 요소로 작용할 듯하다.
양김씨가 특정지역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계속 행사하고 있고, 또 공천권을 쥐고있는 현실에서 직접적인 이해당사자들이 쉽사리 양김씨의 영향권을 벗어나기는 힘들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양김씨가 선거전과 같은 절대적 권위를 유지하기는 어차피 힘들게 됐다.
이번 선거결과에 대한 일차적 책임은 양김씨가 져야한다는 당내외의 압력을 받을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논리적으로 볼때 설혹 부정이 있었다 해도 양김씨를 지지해준 표가 노태우후보를 압도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들은 분열의 책임을 지지 않을 수 없게 되어있다.
이러한 책임추궁 분위기는 앞으로 정국전개 양상과 연관되어 형성될 것으로 보인다. 먼저 단일화에 대한 책임추궁이 당외의 재야·학생들로부터 시작되어 당내로 스며들어 올 전망이다.
또 선거후유증을 극소화하려는 여권에 의해 여권내의 체제개편이 예상되고 이런 과정이 야권의 개편에도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견된다.
민정당이 선거에서 내걸었던 「3김시대의 종식」 이라는 구호는 앞으로의 정국주도를 은연중 내비춘 것이라고 보는 야당인사들도 있다.
양김씨에 대한 책임론이 언제, 어떤 형식으로 전개될지는 미지수다.
우선 표의 결과만을 놓고 보면 3등을 한 김대중씨가 단일화에 대한 책임을 더 많이 져야한다는 얘기도 나올법하다.
그러나 당의 구성으로 보면 다원적 세력으로 구성된 민주당에서 좀더 쉽게 책임 추궁론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다.
사실 국회의원선거를 앞에 놓고 민주·평민 양당의 의원후보들은 고민이 이만저만이 아니다. 야당이 지금까지는 명분을 앞세워 국민에게 표를 달라고 호소했는데 다음 선거에. 나가 국민에게 무슨 할말이있겠느냐는 것이다.
특히 민주·평민당은 물론 공화당까지도 소선거구제를 실시한다는 전제 아래 전국 행정구역별로 조직책을 사실상 임명해 놓은 상태이므로 전지역에서 1명의 여당후보를 상대로 3명의 야당후보가 함께 싸워야 할 운명에 놓여있다.
이러한 구조적 약점 때문에 벌써부터 총선에서 야권의 참패를 예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이런 위기의식이 야권의 재통합을 촉진시킬 수도 있다.
통합과정에서 양김씨의 영향력은 현저하게 축소되고 제2의 세대가 뉴리더로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
민주당의 경우 외인부대격인 김상현부총재·이기택의원등과 친위부대격인 최형우·김동영부총재등이 다음 세대로 조심스럽게 거명되고 있는것도 사실이다.
이 통합과정에서 야권이 보수대 진보라는 이념적 분기현상을 보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선거운동과정에서 평민당은 근로자·농민·저소득층을 위한 계층정당임을 이미 표방했고 무소속의 백기완후보도 민중후보를 자처했던 점으로 볼 때 이같은 욕구를 대변할 정당의 출현소지가 어느 정도 조성됐다고도 볼 수 있고 또 불가피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권위주의 구조하에서 억압의 강도가 높으면 잡다한 반대세력들은 하나의 구심점으로 모아지는 반면 자유화의 분위기는 이들을 본래의 각자의 위치로 분산시키는 경향이 있다.
선거 후 사회적 기강확립이라는 차원등에서 여권이 경성 정책을 펼 경우 이것이 야권을 재통합시키는 자극제로 작용할수도 있다고 본다.
지금까지 한국정치에 막강한 압력집단으로 존재했던 재야도 이번 선거과정에서 보인 분열상과 형태로 말미암아 그 영향력이나 위신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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