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드 배치 번복 없지만 환경평가 결과 반영? 미ㆍ중 모두로부터 불신 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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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는 28일 고고도미사일방어(THAAD·사드) 체계를 배치할 경북 성주골프장에 대한 일반 환경영향평가 실시 결정을 발표하며 “사드 체계의 최종 배치 여부는 환경영향평가 결과를 반영해 결정할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발표 직후 국방부 당국자는 기자들과 만나 “동맹의 결정에는 추호의 변함도 없다”고 말했다. 자연스럽게 “그럼 평가는 요식 행위 아니냐”, “결론을 정해놓고 하는 평가인가”라는 질문이 이어졌다. 이 당국자는 “아니다. 절차적 정당성을 거치고, 그 과정의 결과를 최종 존중한다는 의미”라고 답했다. 한미동맹을 생각하면 사드 결정을 번복할 수 없고, 국내 여론을 생각하면 민주적 절차 준수 약속을 어길 수도 없는 정부의 고민이 드러나는 장면이었다.

28일 오후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미군 장비가 놓여있다. 이날 국방부는 사드 부지에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28일 오후 경북 성주 주한미군 사드 기지에 미군 장비가 놓여있다. 이날 국방부는 사드 부지에 일반 환경영향평가를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연합뉴스]

 정부는 환경영향평가 실시 발표 전 미 측에 사전 설명도 했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은 27일 밤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과 30분 동안 통화했다. 외교부의 보도자료에는 빠져 있지만, 통화에서 강 장관은 환경영향평가는 국내 절차적 정당성 확보 차원이며 사드 배치 결정을 바꾸는 것은 아니라는 취지로 설명했다고 한다.

 송영무 국방부 장관도 26일 마크 내퍼 주한 미 대사대리를 접견해 비슷한 내용을 설명했다고 한다. 미 측의 오해를 막기 위해 외교·국방 수장이 동시에 나선 것이다. 정부가 환경영향평가 완료 전이라도 이미 배치된 사드 포대는 임시운용하겠다고 확인한 것도 배치 결정 번복이 아니란 점을 강조하기 위한 조치다.

 헤더 노어트 미 국무부 대변인은 강 장관과 틸러슨 장관의 통화 직후인 27일(현지시간) 브리핑에서 “틸러슨 장관은 한국에 대한 확고하고 완전한 방위공약을 확인했다”고만 소개했다.

 하지만 당초의 ‘조기 배치’ 약속을 뒤집고 사드 완전 배치에 10~15개월이 더 걸리게 된 것은 결과적으로 한미관계에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 연내 첫 방한을 할 경우 이 때까지도 사드 배치는 미완으로 남아있게 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는 11월 베트남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아시아를 방문하는데, 이를 계기로 한국에 올 가능성이 있다.

 당장 임시운용할 수 있는 장비도 레이더와 발사대 2기 뿐이다. 사드 한 포대는 레이더와 발사대 6기로 이뤄진다. 2기로는 ‘절름발이 운용’밖에 할 수 없다. 북한이 내년 초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실전배치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 상황에서 안보에 구멍을 남겼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한미동맹에 끼칠 해를 생각하면 사드 배치 결정을 바꿀 수는 없고, 환경영향평가를 하면서 배치를 지연시켜놓고 그 기간 동안 중국을 설득하겠다는 게 정부의 의도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는 오히려 한중관계에도 악재로 작용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천영우 한반도미래포럼 이사장은 “사드 문제가 매듭지어지지 않는 이상 중국도 사드 결정을 번복하라고 한국에 계속 압박을 가할 수밖에 없다. 중국이 다른 선택을 하고 싶어도 정부가 출구를 닫는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윤덕민 전 국립외교원장도 “중국은 문재인정부 출범을 계기로 출구를 찾으려 했는데 사드 배치에 1년 넘게 더 걸린다고 하니, 오히려 중국이 문제 제기를 계속 안 하면 이상한 상황이 됐다”고 말했다.

 정부가 미국과 중국 중 한 쪽에게만 만족스러운 결과를 피하기 위해 배치 완료도 철회도 아닌 제3의 방안을 내놨지만, 결과적으로는 양 쪽 모두를 만족시키기는 어려운 모양새가 된 셈이다. 관련 사정을 잘 아는 외교가 소식통은 “정부는 환경영향평가 실시로 지난 정부가 저지른 절차적 흠결을 바로잡게 된 것을 중국 측도 평가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지만, 실제 중국은 ‘어차피 배치할 것이라면 시간 좀 더 걸리는 게 무슨 차이냐’는 입장”이라고 귀띔했다.

김한권 국립외교원 교수는 “이번 결정으로 미·중 모두 정책적 불신을 표할 수 있다. 국내적으로 민주적 절차를 지키는 것과 별도로 이런 불신을 차단하기 위해 외교역량을 집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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