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 사기업이었다면 존립 기반 잃었을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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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오세인(54·사법연수원 18기·사진) 광주고검장이 17일 사의를 표명하며 “검찰이 다수의 경쟁자를 가진 사기업이었다면 벌써 존립의 기반을 잃었을 것이다”고 밝혔다.

오세인 광주고검장 사의 표명 #“국민 기대 못미친 수사 다시 해야”

오 고검장은 검찰 내부통신망 ‘이프로스’에 올린 퇴임의 변에서 검찰을 기업에 견주며 개혁의 필요성을 언급했다. “많은 과오에도 불구하고 검찰이 존립을 보장받았던 것은 경쟁없는 업무환경 덕분이었다”는 것이다. 오 고검장은 “경쟁자가 등장하기 전에 보다 높은 품질의 사법서비스를 제공해 그 수요자인 국민의 신뢰를 확보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한 상태에서 경쟁조직의 설립이 거론되는 상황을 맞았다”고도 했다. ‘경쟁조직’은 고위공직자비위수사처를 지칭한 것으로 해석된다.

오 고검장은 또 “지난 시기에 문제됐던 사건들을 공론의 장으로 가져와 무엇이,어떻게,왜 잘못됐는지를 국민의 시각으로 재점검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미완의 수사에 대해서는 정의에 부합하는 보충수사가 이뤄져야 할 것이다. 이것이 신뢰회복의 출발점이자 기준점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검찰 인사에 대해서는 “탈정치화와 객관성이 중요하다”며 “정당하고 떳떳하게 사건을 처리한 것이라면 어떤 경우에도 인사에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심어주는 것이 우리 검찰의 선차적 과제”라고 지적했다.

오 고검장은 임진왜란 금산 전투에서 숨진 제봉 고경명 선생이 지은 ‘마상격문(馬上激文)’에 나온 구절을 인용해 “옳은 도리로 패하는 자는 망하지 않는다”고 검찰 후배들을 격려했다. 강원도 양양 출신으로 서울대 법대를 졸업한 오 고검장은 대검 공안부장과 서울남부지검장, 대검 반부패부장을 역임했다.

윤호진 기자 yoong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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