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번역한 기술책 남한서도 볼 수 있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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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북한 인력이 번역한 기술서적들을 남한 국민들이 볼수 있게 됐어요.남북이 더욱 가까이 다가간 셈이죠”

지난 9일부터 나흘간 평양을 방문해 인민대학습당(우리의 국립도서관) 최광렬 부총장과 기술도서 번역사업 계약을 체결하고 돌아온 (주)영진출판 한상진(韓相振·42) 사장.

韓사장이 대북사업을 추진한 것은 ‘출판 세계화’라는 욕심을 현실화하는 과정의 하나였다.남북이 힘을 합치면 더욱 큰 성과를 얻을 수 있다는 판단에서다.

“우리 민족은 세계최초의 인쇄물인 다라니경을 발명하는 등 세계최고 출판기술의 피가 흐르고 있잖아요.북쪽과 힘을 합친다면 더욱 큰 경쟁력을 확보할수 있다는 판단이었어요.북한의 번역기술이 수준급이고 경제성도 있다는 확신이 있었지요”

이번 계약은 영진출판에서 발간한 서적을 영어와 일어,중국어로 번역해 해외에 수출하고,해외의 기술서적을 한국어로 번역하는 사업이다.특히 韓사장은 번역작업에 아래한글과 MS워드 등 한국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고,북한말이 아닌 한국말로 번역하는데 심혈을 기울였다.남북간의 언어 이질감을 극복하자는 차원에서다.이런 그의 순수한 의도에도 말못할 사정이 숨어있었다.

삼육대 겸임교수를 하며 교육의 중요성을 몸소 체험했던 그다.출판은 교육의 일환이라는 생각속에 자신의 회사에서 출간한 서적들을 국방부와 연변등지에 지원하기도 했다.북한에도 지원해야겠다는 생각에 1997년 한차례 시도했지만 NGO단체를 통해서야 가까스로 이뤄졌다.韓사장은 그때 북한이란 ‘장벽’을 처음으로 실감했다.또 여러 기업들이 북한에 투자하면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는 모습을 지켜보며 그의 마음이 약해지기도 했다.무엇보다 북한과 접촉하는데까지 많은 비용이 든다는 얘기를 듣고는 포기할까도 생각했단다.

그러나 IT출판 업체답게 인터넷을 통한 접촉에서 모든 계약조건을 협의했고 계약당사자들과 첫만남에서 계약을 성사시켰다.
“사전접촉비용으로 1원도 쓰지 않았습니다.모든 협의는 북측과 온라인접촉을 통해서 했고 첫방북·첫만남에서 계약을 체결했지요.이런 방식은 북에서도 처음이라고 하더라구요.남북경협에 새로운 모델을 만들어 윈-윈 할 수 있는 조건을 만든것이지요.”

그는 또 이번 방문기간 대북 기술서적 지원사업도 합의했다.영진출판에서 발간한 서적 2천여종 1만권(시가 1억5천여만원)을 비롯해 향후에도 발간하는책 5권씩을 인민대학습당에 기증키로 합의한 것.

“북한도 최근 IT열풍에 쌓여 있는것 같더라구요.하루 1만명이 찾는 학습당에서 북한 주민들이 우리의 책으로 공부할 수 있게 됐어요”
정용수 기자nky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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