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형제의 비극' -거제 삼성중공업 충돌사고 안타까운 사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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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안 보인다. 같이 왔는데 동생이 안 보인다. 내 동생 어딨어요?”
지난 1일 오후 거제 백병원 입원실. 삼성중공업 경남 거제조선소 타워크레인이 무너지면서 복부에 부상을 입은 A씨(47)는 치료를 받는 도중에 가족 등 주변 사람들에게 이 말을 되풀이했다. 함께 사고를 당한 동생 B씨(44)가 이날 오후 6시쯤 같은 병원에서 치료 중 목숨을 잃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그 사실이 믿기지 않는 듯 혼잣말을 되풀이 했다.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로 둘째 동생이 부상당하고 세째 동생을 잃은 박철우씨가 2일 거제 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로 둘째 동생이 부상당하고 세째 동생을 잃은 박철우씨가 2일 거제 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 송봉근 기자

우애가 깊었던 두 형제가 생사의 갈림길에 선 건 이날 오후 2시 50분쯤. 두 형제는 거제조선소 7안벽에서 건조 중인 약 20m 높이의 해양플랜트 꼭대기 층에 있던 근로자 쉼터 옆에 있었다. A씨는 도면을 보고 있었고, B씨는 수m 떨어진 곳에서 다른 동료들과 작업 관련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형제가 함께 사고 현장에 있다 생사 엇갈려 #3형제 중 막내는 끝내 숨져, 둘째는 다쳐 #부인과 자식 위해 휴일에도 일 나왔다 참변 #셋째 형이 전한 안타까운 형제 사연에 눈물

그 순간 무언가 이상한 낌새에 하늘을 쳐다보던 A씨는 타워크레인 일부가 자신들 쪽으로 넘어지는 것을 봤다.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크레인 붐대(지지대)가 사람들을 덮쳤고, 그 아래 자신의 동생 B씨도 깔렸다. A씨는 순간적으로 몸을 피해 복부를 다치는 데 그쳤지만, 동생은 허리 부분이 철골 구조물에 깔려 중상을 당했다.

형은 동생을 향해 달려갔지만 손쓸 방법이 없었다. 정신없이 여기저기 뛰어 다니며 구조를 요청했다. 조금 뒤 출동한 119 구조대원과 동료 등이 동생을 구조물에서 끌어냈고, 압박 붕대 등으로 지혈 치료를 했다.

두 형제는 119구급대 차에 실려 거제 백병원에 옮겨졌다. 그러나 동생 B씨는 치료를 받던 중 끝내 숨을 거뒀다. 사고 뒤 병원을 찾은 두 형제의 큰 형인 박철우(49)씨는 “병원에만 오면 동생을 살릴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으로 둘째가 셋째를 데리고 병원에 왔는데, 제대로 된 치료를 받지 못하고 셋째가 죽었다고 둘째가 얘기했다”고 말했다.

철우씨는 “사건이 일어난 것이 2시 50분이고 병원에서 사망한 것이 6시쯤이니 구조가 너무 늦었던 것 아니냐. 3시간이 지나도록 큰 병원에 옮기지 못해 동생이 숨졌다고 생각하니 억장이 무너진다”며 눈물을 흘렸다. 하지만 병원 관계자는 “병원이 제대로 대처를 못한 것이 아니고 이미 도착했을 당시 B씨의 상태가 워낙 위중해 응급처치를 하다 숨을 거뒀다”고 해명했다.

두 형제가 조선소에서 일을 시작한 것은 1~2년씩 됐다. A씨는 대학을 졸업한 뒤 학원 강사와 택배 등 여러가지 일을 했다. B씨는 고등학교를 나온 뒤 일식 요리사와 횟집 등을 운영하기도 했다.

그러다 2년전쯤  B씨가 지인의 소개로 조선소 협력업체에서 전기배선 관련 일을 먼저 시작했다. 1년 뒤 A씨도 동생의 권유로 같은 회사로 오면서 함께 일을 하게 됐다.

두 사람은 조선소 일감을 따라 울산과 거제를 오가며 함께 생활을 하면서 우애가 깊었다. 특근·야근을 하면 한 사람당 월 400만원 이상을 받을 수 있어 쉬는 날에도 일감이 있으면 마다하지 않고 일을 했다. A씨는 부인과 2남, B씨는 부인과 2남 1녀의 자녀를 두고 있어 쉬는 날에도 밤낮없이 일을 해 생활비 등을 마련했다.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로 둘째 동생이 부상당하고 세째 동생을 잃은 박철우씨가 2일 거제 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삼성중공업 타워크레인 사고로 둘째 동생이 부상당하고 세째 동생을 잃은 박철우씨가 2일 거제 백병원 장례식장에서 인터뷰 하고 있다.송봉근 기자

철우씨는 “4월 중순 두 동생이 오랜만에 쉬면서 형제와 가족들이 함께 여행을 다니고 시간을 보낸 적 있다”며 “쉬면서 쓴 비용을 채우려면 회사 가서 더 열심히 일해야 한다는 말을 남기고 갔는데, 그게 마지막이 될 줄 몰랐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1일 오후 경남 거제시 장평동 삼성중공업 거제조선소에서 골리앗크레인과 타워크레인이 충돌하면서 타워크레인이 해양플랜트 건조 공사를 하던 근로자들의 쉼터를 덮치면서 6명이 숨지고, 25명이 중경상을 입었다. 사상자는 모두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근로자로 밝혀져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거제=위성욱 기자 w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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