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간 약간의 긴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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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국민들은 이날 또 한번의 놀란가슴을 쓸어내며 눈치를 살폈지만 외관상으로는 평온하기만 했다.
사실 「군부=권부」의 등식이 철저히 적용된 비상계엄하의 한밤중에 일어났던 폐쇄적인 군부내의 파워 플레이였기에 일반시민 누구도 실상에 접근할 수 없었다.
온갖 억측과 수군거림만이 난무했었지만 그 소리는 밖으로 나타나지 않았다.
그저 미국무성의 『정승화 계엄사령관 체포사건이 그동안 진행돼온 민주발전과정에 영향을 미치지 않기를 바란다』 『북괴는 새로운 사태를 악용한 군사모험을 하지말라』는 대북경고 등에서 격변을 감지할 따름이었다.
「크리스터퍼」 미국무차관의 발언은 역설적으로 「새로운 사태」가 한국의 민주화 계획에 차질을 가져올 수 있다는 우려의 표명으로도 이해됐고, 군부내의 갈등이 안보에 손상을 초래할지 모른다는 걱정으로 받아들여질 수도 있었다.
미정부는 즉각 「글라이스틴」 주한미대사·「위컴」 주한미군사령관에게 한국정부 고위관리들과의 접촉을 지시하는 동시에 만일의 사태에 대비, 3만9천명의 주한미군에게 경계령과 외출금지령을 내렸다.
13일 새벽 서울에 출동한 부대중 일부가 배치과정에서 잘못 알고 미국대사관 구내에 들어갔다 나온 사건과 한미연합사령관의 승인없이 전투사단을 동원한것 때문에 그 직후 한미양측간에 약간의 긴장이 있었다.
13일 발표된 국방장관의 특별담화문은 한남동 총리공관사태를 「군수사기관원과 공관경비병간의 경미한 충돌」, 국방부청사에서의 총격전을 「계엄군 증가배치중의 오인 충돌」 등으로 가볍게 설명했다.
사태의 심각성에 비춰 당국도 발표문이 미흡했음을 느꼈는지 「정승화총장의 교체는 대통령의 재가없이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라고 밝히면서 『이희성중장의 대장승진과 계염사령관 임명 및 일부 군수뇌부에 대한 수사가 대통령의 재가없이 이뤄진다면 군통수권을 문란케하는 일이 되므로 당연히 대통령의 재가를 받아 취해진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이날로 예정됐던 신현교 내각의 발표가 늦어진 것에 대해서는 『12일 밤에 일어난 군내부의 문제와는 직접 상관이 없다』는 해명과 함께 『군내부의 문제는 내각구성에는 하등의 영향을 미칠수 없는 별도의 것』이라는 설명도 있었다.
군내부의 동정과 이와 관련한 최규하대통령과 미군의 입장등에 대해 설왕설래가 한창인 가운데 최대통령은 13일 하오 중앙청에 등청, 집무를 함으로써 자신의 건재를 내외에 확인시켰다.
군부가 12일 밤의 「혼란」을 13일 새벽안에 즉각 「수습」하고 새로운 지휘체제를 확립함으로써 격변을 겪은 다음날이었지만 13일은 무사히 지났다.
14일 상오9시, 최대통령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제10대 대통령에 당선된지 8일만에 청와대로 등청, 집무를 시작했다.
첫 행사로 상오9시30분 신총리에게 임명장을 수여한 다음 이희성 신임육군참모총장으로부터 신고를 받고 대장계급장을 달아주었다. 이 자리에는 아직까지 국방장관인 허재현이 배석했다. 하지만 최대통령부인 홍기여사와 가족은 청와대로 이사를 하지 않고 삼청동총리공관에 그대로 머물렀기 때문에 최대통령은 당분간 청와대로 출퇴근해야했는데 서기원대통령공보비서관은 『홍여사의 허리가 좋지않아 온돌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설명했다.
때문에 신총리는 적십자사 부속건물을 공관으로 사용하는 등의 비정상 상태가 지속됐다.
최대통령은 청와대집무를 시작한 이날 하오, 새 내각명단을 발표했다. 「헌법절차」를 중시한다는 최대통령의 지론이 반영돼 20명의 각료중(법제·원호처장 포함) 18명이나 대폭 교체된 내각명단 발표문은 「신현교총리의 제청을 받아」를 특히 강조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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