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송길영의 빅 데이터, 세상을 읽다

시간을 제어하는 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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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2면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

포탄의 궤적을 계산하기 위해 개발됐던 거대한 컴퓨터가 개인의 손에 들어갈 수 있게 된 지 이제 겨우 30년 남짓입니다. 인간의 기준으로 본다면 겨우 한 세대의 시간밖에 흐르지 않았음에도 이제는 많은 사람이 분신 같은 휴대전화를 잘 때를 빼놓고는 놓지 않는 것을 보면 기술의 마력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듣기 위해 만들어진 전화가 이제는 ‘똑똑’해지며 소리보다 훨씬 더 많은 정보를 다루게 되면서 우리의 삶이 송두리째 바뀌는 과정을 우리는 매일같이 목도하고 있습니다. 수천 세대의 진화 과정이 한 세대 안에서 이뤄지며 생기는 것과 같은 격렬한 적응의 과정에 때로는 환희하며, 때로는 지쳐가는 것이지요.

밀레니얼 세대라 불리는 지난 세기 말 출생자의 경우에는 이러한 적응에 비교적 자연스럽다고 할 수 있습니다. 1990년대 중반 이후 출생자는 인터넷과 디지털 기기가 이미 세상에 확산된 상태에서 성장한 사람들로 디지털 원주민이라 불립니다. 그들이 가진 형질 중 하나가 바로 사람끼리의 동기적(synchronous) 접촉을 그리 달가워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e메일로 생각을 전하던 습관에서 시작돼 이제는 ‘좋아요’ 버튼을 누른 후 나중에 친구들이 확인하도록 합니다.

회사에서 젊은 사원들이 전화보다 카카오톡 같은 메신저로 대화를 원하는 이유 또한 설명 가능합니다. 감정이 실리지 않은 대화를 하고 싶기도 하고, 답변하기 싫거나 거절하기 곤란한 상황에 시간을 두고 숙고하거나 그야말로 ‘읽고 씹을 수 있는 여지’를 남기기 위해 실시간 통화보단 메신저를 선호하는 것이죠.

경제성의 이유 또한 무시할 수 없습니다. 인터넷 기반의 강의를 듣고 자란 세대의 경우 1.5배속이나 2배속으로 들으며 아는 내용은 건너뛰고 다시 듣는 등 정보의 수용을 본인이 주도하는 경험에 익숙합니다. 따라서 앞에 있는 직장 상사가 실시간으로 천천히, 그것도 미괄식으로 이야기하는 것을 참지 못하는 것이죠.

방송국도 예외가 아닌지라 이제 본방의 시청률이 예전만 못한데 여기엔 인터넷 TV(IPTV)의 다시 보기의 경우 앞으로 건너뛰어 시간을 절약할 수 있게 된 것도 한몫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열띤 경기 속 허공에 떠 있는 셔틀콕을 멈추게 하고 차 한잔을 마시는 마법사와 같이 우리는 이제 시간을 제어하고 관계를 주도하는 초능력을 얻고자 하는 듯합니다. 새로운 세상 속 당신의 습관은 라이브인가요, 아니면 온 디맨드로 향하고 있나요? 

송길영 다음소프트 부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