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준·이재주 기아의 '진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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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시즌 중반 삼성 김응룡 감독은 홈런타자 이승엽에게 호통을 쳤다. 김감독은 이승엽에게 팀을 위한 희생 플라이가 한개도 없다는 사실을 환기시키며 야구는 팀 스포츠라고 강조했다. 맞는 말이다. 팀이 승리하려면 희생번트도 있어야 하고, 상대 타선의 기를 죽이는 몸을 사리지 않는 수비도 있어야 한다. 눈에 잘 띄지도 않고, 자칫하면 다칠 수도 있는 허드렛일을 누군가는 해야 한다.

요즘 기아를 보면 '속병'을 어느 정도 치료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속병'이란 바로 개인 플레이다. 올 시즌 기아는 무기력증이 심했다. 기회를 맞아서도 집중력이 떨어졌다. 후반 역전패도 수두룩했다. 모든 책임을 슬럼프에 빠진 마무리 진필중에게 돌릴 수만은 없었다.

그런 기아가 최근 들어 5승1패2무의 상승세를 타고 있다. 물론 최상덕.김진우가 이끄는 안정된 선발진이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종범의 타격감도 회복세를 타고 있다. 그러나 이는 부분적인 이유일 뿐이다. 진정한 '약발'은 다른 데서 찾아야 한다.

'수입 호랑이' 허준(33)과 이재주(30)가 그 주인공이다. 두 선수는 모두 다른 팀 출신으로 정통 기아 인맥이 아니다. 처음부터 주전급으로 데려온 선수도 아니었다. 그러나 잡초처럼 살아온 두 선수는 강인한 정신력을 바탕으로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을 충실히 해내며 기아를 살려내고 있다.

내야수 허준은 지난달 24일 한화에서 트레이드됐다. 한화는 프로 11년 동안 이렇다할 활약이 없었던 허준을 내주며 기아로부터 이적료 3백만원을 받았다. 사실상 '공짜'인 셈이다. 그러나 내야수가 부족한 기아에서 허준은 부상 중인 2루수 김종국과 타격감이 나쁜 3루수 이현곤을 대신해 빈곳만 있으면 비집고 나선다. 최근 5경기에서는 당당히 주전을 꿰찼다. 이 기간에는 타율도 0.294로 괜찮은 편이다. 12일 광주 롯데전에서는 2회 적시타로 결승타를 때리기도 했다.

지난해 중반 현대에서 기아로 옮겨온 이재주 역시 최근 확실한 지명타자로 자리잡았다. 최근 5경기 타율은 0.400. 하위 타선의 핵이다. 이재주는 1993년부터 2001년까지 9년간 현대 시절 백업포수로 대부분 2군에서 지냈다. 그러나 찬스에 강한 면을 높이 평가한 기아 김성한 감독의 발탁으로 새로운 야구인생을 살고 있다.

김종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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