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저명한 젠 마스터 노먼 피셔, 테크놀로지에 일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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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먼 피셔는 "내사 세상입니다. 세상이 나입니다. 우리 모두는 홀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노먼 피셔는 "내사 세상입니다. 세상이 나입니다. 우리 모두는 홀로 동떨어진 존재가 아닙니다"라고 말했다.

“테크놀로지에는 성찰이 빠져 있다. 우리는 무엇을 위한 테크놀러지인가를 물어야 한다.”

미국의 저명한 ‘선(禪) 스승(젠 마스터)’으로 꼽히는 노먼 피셔가 8일 한국을 찾았다. 미국에 처음으로 동양의 선을 소개한 인물은 일본 조동종의 스즈키 순류 선사다. 스즈키의 제자인 피셔는 서양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샌프란시스코 젠 센터에서 주지도 맡으며 오랫동안 선(禪)수행을 지도했다. 지금은 ‘에브리데이 젠’을 설립해 일반인들에게 선을 전하고 있다. 피셔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구글 본사에서 직원들을 대상으로 명상 프로그램 ‘서치 인사이드 유어셀프(Search Inside Yourself)’를 가르치기도 했다. 서울 종로구 견지동 템플스테이통합정보센터 3층에서 피셔를 만났다.

인공지능(AI)과 4차 산업혁명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선(禪)은 우리에게 무엇을 줄 수 있나.
“최근 테크놀로지에 대한 책을 하나 읽었다. 진일보한 컴퓨터로 우리 의식에 있는 모든 걸 다운로드 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래서 사람의 수명이 다할 때 우리의 의식을 로봇에 이식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럼 절대 죽을 일이 없다고 한다. 영원히 살 수 있다고. 그렇게 하나의 몸을 벗고, 그게 수명이 다하면 또 하나의 몸을 벗으며 계속 산다. 이게 어떻게 들리나? 좋게 들리나? 그게 실제 가능한지 나는 모른다. 그런데 이런 시대에 살면서도 나의 친구는 LP판 레코드 가게를 한다. 그 친구는 테크놀로지가 식상해서 옛날 아날로그적인 걸 팔고 있다. 며칠 전에는 내가 50년 전에 모았던 LP판을 갖다주었다. 아주 좋아했다. 눈 부시게 발전하는 테크놀로지에는 ‘성찰’이 빠져 있다.”
무엇을 위한 성찰인가.
“테크놀로지를 양산해내는 사람들은 매우 신이 나 있다. 거기에 돈을 대는 자본가들은 더 신이 나 있다. 경제 성장은 모두에게 중요하다. 그래서 다들 신이 나 있다. 그런데 우리는 모두 인간으로 존재하고 있지 않나. 테크놀로지는 거기에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우리 모두가 갖고 있는 인간적 토대(Human foundation)에 어떤 작용을 할 수 있을까. 우리는 이제 그러한 질문을 던져야 한다. 그런 대화를 시작해야 한다. 테크놀로지를 인간의 삶에 어떻게 유용하게 통합시킬 수 있을까.”

-그럼 테크놀로지는 선인가, 아니면 악인가.
“지금 우리는 문자 그대로 테크놀로지에 중독돼 있다. 모두가 알다시피 중독은 나쁜 것이다. 그래서 테크놀로지 회사들이 테크놀로지가 가져오는 문제들에 대해 성찰을 해야 한다. 우리가 인간으로 존재하는 한, 우리는 내면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침묵 속으로 돌아가고, 사랑 속으로 돌아가야 한다. 테크놀로지가 여기에 장애가 되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면 우리는 저항해야 한다. 테크놀로지에 저항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아메리카 퍼스트’ 정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휴먼 퍼스트! 사람이 먼저다. 사람뿐만 아니다. 다른 동물들도 퍼스트, 식물들도 퍼스트, 공기와 물, 그리고 저 산도 퍼스트다.”

피셔는 서울 상도선원장 미산 스님과 해남 미황사 주지 금강 스님, 권선아 스트리트젠 대표 등으로 구성된 모임인 ‘다르마 프렌즈’의 초청으로 방한했다. 8일 오후 7시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에서 ‘내가 세상입니다. 세상이 나입니다’ 강연을 시작으로 오는 21일까지 13일간 대중과의 만남과 선수행 프로그램 등을 이어간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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