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벌리니 못쓰지’ 가계소득 7년 만에 감소, 양극화 더 심해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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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 벌리니 못 쓴다’. 얼어붙은 내수, 이유가 따로 있는 게 아니었다. 지난해 한국 가구의 실질 소득이 0.4% 줄었다. 가구 소득이 감소한 건 7년 만이다.
24일 통계청 ‘가계동향’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가구(2인 이상)는 월평균 439만9000원을 벌었다. 명목상으로는 지난해보다 0.6% 늘었지만 소비자물가 상승분을 제외(실질)하면 0.4% 오히려 줄었다. 실질 가계소득이 감소한 건 글로벌 금융위기가 번졌던 2009년(-1.5%) 이후 처음이다. 실질 가계소득 증가율은 2012년 3.9%, 2013년 0.8%, 2014년 2.1%, 2015년 0.9%로 내리막을 걷더니 지난해 들어 아예 마이너스(-)로 꺾였다.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감률 추이 [자료 통계청]

가구당 월평균 소득 증감률 추이 [자료 통계청]

아시아 외환위기(1997~1998년), 리먼 브러더스 파산으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2007~2008년) 같은 대형 외부 충격이 없는 상태에서도 한국은 경제위기 급 소득 한파를 겪고 있다. 이유는 명확하다. 일자리 자체가 크게 늘지 않고 있는 데다, 기존 구직자의 월급도 좀처럼 오르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기획재정부가 이날 낸 ‘가계동향 분석’ 보고서를 보면 취업자 수 증가 폭은 2012년 43만7000명, 2014년 53만3000명에서 지난해 29만9000명으로 꺾였다. 근로소득 증가율 역시 2012년 7.7%였는데 2014년 3.9%로 반 토막 나더니 지난해 1.0%에 불과했다.

팍팍한 살림살이, 늘어난 건 술ㆍ담배 지출

소득이 줄고 향후 경기도 불투명하다보니 가계는 허리띠를 잔뜩 졸라맸다. 지난해 국내 가구는 월평균 336만1000원을 지출했다. 물가 상승분을 더한 명목상 소비지출(전체 지출-비소비 지출)은 전년과 견줘 0.5% 줄었고, 물가 상승분을 뺀 실질로도 1.5% 지출이 감소했다.
내수 경기가 침체한 게 단순히 소비 심리 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가구는 지난해 의류ㆍ신발(전년 대비 -2.4%), 통신비(-2.5%), 식료품(-1.3%) 지출을 줄였다. 늘어난 건 주류ㆍ담배(5.3%), 보건(1.6%), 음식ㆍ숙박(1.4%) 정도다. 이마저도 담뱃세 인상, 고령화, 외식ㆍ여행 물가 상승 같은 영향이 컸다. 가계가 허리띠를 졸라맨 덕분에 지난해 월평균 가계수지(소득-지출) 흑자는 103만8000원으로 2015년 대비 3.8% 늘었다.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 증감율 추이 [자료 통계청]

가구당 월평균 소비지출 증감율 추이 [자료 통계청]

이런 가운데 소득 양극화는 더 심해졌다. 소득 하위 20%(1분위) 가구의 지난해 월평균 가구 소득(명목 기준)은 5.6% 줄어든 데 반해 소득 상위 20%(5분위) 가구 소득은 2.1% 증가했다. 소득 상위 20% 가구의 소득(지출에서 세금 등 각종 필수 지출을 뺀 처분가능소득 기준)이 하위 20%의 몇 배가 되는지 따져봤더니 2014년 4.45배에서 2015년 4.22배로 줄었다가 올해 다시 4.48배로 반등했다. 소득 양극화 정도가 그만큼 심각해졌다는 의미다.
조현숙 기자 newea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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