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부처, 자율적 권한 가지며 자기 목소리 내기 시작한 국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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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비서관은 "제왕적 대통령 아래에서 눈치만 봐 오던 정부 부처들이 자율적 권한을 확보하면서 '자기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국면으로 볼 수 있다"는 얘기다. "우리 사회를 ▶민주화 투쟁기▶억압적 구조의 해체기▶대화와 타협을 통한 협치(協治)의 민주주의 발전 단계로 분류할 경우 둘째에서 셋째로 넘어가는 과도기적 진통"이라는 해석이다.

문제는 이런 갈등을 풀어낼 문화와 모델이 정착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경찰청 수뇌부의 돌출적이고 일방적인 회견은 과거 재야단체의 저항적인 '투쟁의 문화'가 공직사회에 감염된 것으로 볼 수 있다. 경찰 측의 의혹대로 검찰이 최 차장을 표적수사했거나 검찰이 다시 역공에 나선다면 이는 과거 '권위주의적 권력기관 문화'에 갇혀 있다는 방증이다. 권력은 상호 견제와 자율모델로 바뀌었는데 문화는 여전히 힘과 압박, 강(强) 대 강(强) 방식에 젖어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과도기의 후유증은 모두 국민의 고통으로 전가된다. 권력기관 간 갈등의 가장 부정적인 측면이다.

전문가들은 "권위주의 시대 이후 새로운 질서가 짜이는 시기에 먼저 유리한 위치를 점하려는 권력기관 간 다툼이 있게 마련"(이내영 고려대 교수), "이번 사태는 민생에 결정적으로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숭실대 강 교수)고 지적한다. 과도기일수록 충돌과 갈등의 한가운데 뛰어들어 이를 설득, 조정하는 리더십이 필요한 측면도 있다. 권력기관을 장악하지 않겠다는 게 기관 간 혼선과 소모를 방치하는 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노 대통령의 방식이 리더십 행사의 회피처럼 비춰져 권력기관의 무리한 행동을 유발한다는 지적이 이와 관계 있다.

세 가지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우선 노무현 대통령이 "우리 사회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해야 한다"고 한 것처럼 상대주의, 대화와 타협의 문화를 강조하는 방식이다. 한 참모는 "이번 사태도 상위기관인 청와대의 개입보다 인내심을 갖고 지켜본다는 게 대통령의 입장"이라고 했다. 둘째는 "이대로 방치하면 국가 안전의 축이 흔들릴 수 있어 대통령이 나서서 갈등을 봉합해 법과 질서에 의한 권위를 세워야 한다"(김광웅 서울대 교수)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합리적인 공론의 장을 만들어 줘야 한다는 제안도 많았다. 국회가 그 역할을 하라는 것이었다. 김민전 경희대 교수는 "권력기관들이 자신의 입장을 대변하는 의원들을 통해 공론의 장에 부쳐 해법을 찾는 시스템이 긴요하다"고 강조했다.

최훈.남궁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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