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남성 ‘유전결혼 무전비혼’ 수렁에 빠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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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4호 1 면

백영민(38·가명)씨는 서울에 있는 중학교의 기간제 체육 교사다. 백씨는 스스로를 ‘결포자(결혼을 포기한 사람)’라고 부른다. 4년제 사립대 체육교육학과를 졸업한 그는 키도 크고 훤칠해 20대 때는 여성들에게 꽤 인기가 있었다. 하지만 결혼으로 이어지진 못했다. 나이가 30대 중반을 넘어서면서 아예 결혼 생각을 접었다. 백씨는 “월수입이 200만원에 불과해 아무리 계산해 봐도 결혼을 해서 가정을 꾸릴 형편이 되질 않는다. 여자 친구를 사귀어 봤지만 나처럼 가난한 비정규직과는 결혼할 의사가 없더라”고 말했다.


경제력이 떨어지는 사람이 결혼에 어려움을 겪는 건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백씨처럼 경제적 어려움을 이유로 연애와 결혼을 포기하는 사람은 예전에도 없지 않았다. 문제는 갈수록 상황이 더 심각해지고 있다는 점이다. ‘결포자’ ‘N포세대(취업·경제난으로 결혼을 비롯한 많은 것을 포기한 세대)’라는 신조어가 이젠 일상어가 됐을 정도다. 소득에 따른 ‘유전결혼(有錢結婚) 무전비혼(無錢非婚)’ 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것이다.

중앙SUNDAY가 지난 10일부터 11일까지 전국 20~30대 남녀 700명을 대상으로 전화 설문조사를 한 결과, 소득이 낮을수록 결혼하기가 어려운 사실이 뚜렷하게 나타났다. 소득이 없는 사람은 기혼 비율이 1.3%, 월 소득 100만원 미만은 0%, 월 소득 100만~300만원은 17.0%에 불과했다. 그러나 월 301만~500만원 소득자는 기혼 비율이 72.9%, 501만원 이상 소득자는 84.8%로 올라갔다. 수입이 없는 전업주부 등을 제외하면 소득과 기혼 비율은 정확하게 비례한다. 그 상관관계를 그래프로 표현하면 기울기가 매우 가파르다.


지난해 11월 한국노동사회연구소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이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를 분석해 작성한 ‘출산과 청년 일자리’ 보고서에도 이 같은 흐름이 드러난다. 지난해 3월 현재 20∼30대 남성 노동자 임금 하위 10%(1분위)의 기혼 비율은 6.9%, 임금 상위 10%(10분위)의 기혼 비율은 82.5%였다. 소득 최상위층과 최하위층의 기혼자 비율이 12배의 격차를 보였다.


최근의 만혼 추세를 감안해 결혼 적령기인 30대만 놓고 봐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특히 남성들이 소득에 따라 결혼 가능 여부가 확연히 갈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지 설문조사에 응한 30대 남성 중 소득이 없거나 100만원 미만인 사람은 모두 결혼하지 못했다. 기간제 교사 백씨처럼 월수입 200만원(100만~300만원 구간)인 30대 남성이 기혼일 가능성은 30%에 미치지 못했다(29.7%). 그러나 월 소득 301만~500만원인 30대 남성은 67.7%, 501만원 이상은 89.5%가 결혼에 성공했다.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의 경제활동인구조사 자료 분석에 따르면 2005년 8월에서 2016년 3월 사이 30대의 기혼율은 77.4%에서 65.2%로 12.2%포인트 떨어졌다. 남성은 고소득자에 비해 저소득자가 결혼하기가 더 어려워졌다. 특히 소득 5분위 이하의 기혼율은 50%에 미치지 못했다. 가난한 사람은 절반도 결혼하지 못한다는 의미다.


30대 남성 중 소득이 가장 적은 1분위부터 4분위까지 기혼율은 27.2%포인트, 중소득층인 5분위에서 7분위는 19.2%포인트가 줄었다. 반면 고소득층인 8분위에서 10분위는 기혼율이 4.6%포인트 감소하는 데 그쳤다. 저소득층은 고소득층에 비해 기혼자수 하락률이 6배에 가깝다. 경제난으로 인한 결혼 포기의 찬바람에 저소득층이 고스란히 노출돼 있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해 실업자 수는 처음으로 100만 명을 돌파했다. 젊은 세대가 가장 큰 타격을 받는다. 2013년 8.0%였던 청년실업률은 지난해 9.8%까지 치솟았다. 직장을 얻지 못한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면 저출산·고령화 사회 전환에 가속도가 붙는다. 이는 내수 침체를 가져와 투자·소비 감소로 이어진다. 점점 더 많은 건실한 청년들이 결혼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의 소용돌이에 빠져들게 된다.


김 선임연구위원은 “어려웠던 1960~70년대에도 청년의 80% 이상이 결혼을 할 수 있었다. 그러나 21세기가 됐는데 오히려 저소득층은 결혼도 할 수 없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며 “저출산이 고착화되는 등 우리 사회의 큰 불안 요인으로 작용할 게 자명한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지적했다. 전상진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층의 남녀만 결혼하고 중하층은 가족이 붕괴하고 있다. 이로 인해 계급 간 장벽이 공고해지면 우리 사회의 버팀목인 생산력 공급에 차질을 빚고 신분제 봉건사회로 퇴행한다는 우려마저 나오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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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호준·박민제 기자sung.hoj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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