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만 인수 복병 만난 삼성…미국 투자자들 “돈 더 내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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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미국의 차량용 전자장비 업체 하만을 사들이려는 삼성전자의 계획에 장애물이 나타났다. “삼성전자가 제시한 인수가격(80억 달러, 9조6000억원)이 너무 낮다”며 하만의 주주들이 잇따라 반발하고 나선 것이다. 13일 외신에 따르면 하만의 소액주주들은 미국 델라웨어주 형평법 법원에 “삼성전자와의 합병 추진 과정에서 회사 가치를 낮추고 불리한 협상 조건을 감수했다”며 디네시 팔리월 하만 최고경영자(CEO) 및 주요 경영진을 상대로 집단 소송을 냈다. 얼마나 많은 소액주주가 참여했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지난달엔 하만의 주식 2.3%를 보유한 미국의 헤지펀드 애틀랜틱 인베스트먼트 매니지먼트 측이 “인수 가격이 낮다”며 주주총회에서 반대표를 던지겠다고 공개 선언한 바 있다.

헤지펀드의 공개 반대 선언 이어
“독점적 인수협상으로 피해”
소액 주주들도 집단소송 제기
국내 투자업계 “협상 뒤엎진 못해”
삼성 측에 적극적 설득 작업 주문

집단 소송을 제기한 소액주주들이 가장 문제 삼는 부분은 하만이 삼성전자와 독점적인 인수 협상을 벌였다는 것이다. 이들은 소장에서 “인수 협상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하만에 잠재적으로 관심을 보였을 만한 회사들과 접촉하지도 않았고, 결과적으로 주주 가치를 최대화하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애틀랜틱 인베스트먼트도 같은 부분을 지적했다. 애틀랜틱 인베스트먼트 창립자인 알렉산더 로퍼스는 “하만의 기술은 자동차 산업에 뛰어든 구글이나 애플, 테슬라나 퀄컴도 관심을 가질 만했다”며 “경쟁 입찰을 추진하지 않은 것은 하만 경영진의 잘못”이라고 주장했다.

인수에 반발하는 주주들이 원하는 것은 하나다. 삼성전자에 “더 많은 돈을 내놓으라”는 것이다. 80억 달러란 인수가는 하만의 주식을 주당 112달러로 계산해 나온 금액이다. 인수 발표(11월 14일) 직전 거래일인 11월 11일 종가보다 28%, 이 회사의 한 달 평균 종가보다 37%의 프리미엄을 얹었다. 그런데도 반대파들은 “하만의 주가는 더 오를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한다.

삼성전자는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뛰어든 차량용 전장 사업을 하만의 기술력과 네트워크를 활용해 크게 확대한다는 계획이다. 하만은 특히 양방향 모바일 소통이 가능한 ‘커넥티드카’ 분야 기술이 앞서 있다. 하만은 최근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전시회(CES)에 ▶탑승자 두 명이 각각 독립된 화면과 음악을 감상할 수 있는 대시보드 ▶동공과 지문 인식 등을 통해 탑승자의 신원을 파악하는 보안 장치 ▶탑승자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검색해 친구가 추천한 노래를 틀어주는 기술 등을 선보였다.

조철 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하만의 커넥티드카 관련 기술력, 30여 개 완성차 업체와의 네트워크는 삼성전자의 전장 사업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금융투자업계는 주주들의 반대 움직임이 인수협상을 뒤엎을 정도로 큰 타격이 되진 않을 걸로 내다봤다.

김동원 KB증권 기업분석부장은 “주주 가치를 최대화하기 위해 집단 소송을 불사하는 것은 미국 사회에서 흔한 일”이라면서도 “삼성전자로선 중요한 거래인 만큼 적극적으로 주주 설득 작업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임미진 기자 mij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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