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탄전 피하는 정동영… 세력 과시용 투어, 연출성 이벤트 자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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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초 정 전 장관 진영에선 '당권파가 당을 망쳤다'는 김근태 의원 측의 계속되는 공격에 '세 과시형 전국 유세 투어'로 맞불을 놓자는 의견이 많았다고 한다. 그러나 정 전 장관은 정면 충돌을 피하고 '소규모 지역당원 간담회'로 결론냈다. 많은 사람을 상대로 호소하는 전국 유세형이 전통적인 정동영 방식이란 점을 감안하면 다소 의외다.

새해 벽두인 2일 그는 전남 장성의 백양사를 찾았다. 주변에선 '왜 하필 백양사냐'는 얘기가 나왔다. 백양사 주지인 지선 스님은 김근태 의원의 광주.호남 지역 후원회장이다.

정 전 장관의 2박3일 산사 일정을 지켜본 한 인사는 "지선 스님도 처음엔 정 전 장관의 방문에 난감해 하는 것 같았다"며 "정 전 장관은 지선 스님과의 면담을 재촉하지도 않고, 2평 남짓한 방안에서 독서와 낮잠만으로 시간을 보냈다"고 전했다. 마지막날 지선 스님은 정 전 장관에게 '하심(下心)'이라는 화두를 던졌다. 정 전 장관은 "'초심으로 돌아가 겸손함의 하심을 보여주면 결국 민심을 얻는다'는 말씀으로 새기겠다"며 서울로 향했다.

정 전 장관도 최근 자신의 행보를 '신중함'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는 참모들에게 "1년여 통일부 장관을 지내면서 외교안보 수장으로서 경험한 최고의 덕목은 '신중함'이었다"고 강조한다.

정 전 장관은 17일 청주의 기자간담회에서 '3불(不).3가(可)'를 선언했다. 당내 편 가르기, 노선 투쟁, 네거티브 선거전략 등 세 가지를 하지 않고, 의회주의 파괴세력과의 투쟁, 수구냉전 연합과의 투쟁, 과거 회귀 세력과의 투쟁 등 세 가지를 하겠다는 것이다. 그는 "내부를 향해 총을 쏘지 않겠다. 총구는 야당과 수구세력을 향해 겨누겠다"고 말했다.

정 전 장관의 변신 시도는 김 의원의 변신만큼이나 눈길을 끈다. 세(勢)의 과시, 화려한 연설, 연출성 이벤트 등 그만이 가진 특징들을 요즘 찾아보기 어렵기 때문이다. 정치 분석가들은 그의 특징들이 소수파로서 다수 주류세력을 공격할 때는 유용한 수단이지만 '지도자다운 모습과 콘텐트가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원인이기도 하다고 말한다.

정 전 장관의 변신이 전당대회 당 의장 선거뿐 아니라 전당대회, 지방선거 이후의 '지도자다운 이미지'구축을 염두에 둔 전략적 변화란 분석이 나오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정 전 장관이 초반부터 만만치 않게 시작된 김근태 의원의 추격전을 소규모 간담회, 초심의 겸손함, 신중함만으로 계속 버텨나갈지 지켜보는 것도 여당 선거전의 감상 포인트다. 당내 주자들과의 육탄전은 피하겠다는 의미다.

이수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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