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정당 「직선제개헌」 발표되던 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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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대표위원이 대전환의 폭탄선언을 발표한 29일 아침의 민정당중집위는 충격과 경악 의 분위기.
노대표는 이날 상오 8시50분쯤 당사에 나와 당직자들과 잠시 얘기를 나누고 9시8분쯤 9층 중집위회의실로 올라가 회의에 참석.
민정당사는 이날 『노대표가 당의 대통령후보직을 사퇴할 것』 이라는 추측이 나돌아 아침부터 술렁거렸으며 중집위회의장에는 내·외신기자 60여명이 몰렸다.
사회자가 기자들에게 회의 시작을 알리면서 『회의장 정리를 위해 자리를 비켜달라』 고 요청하자 노대표는 『오늘 할 얘기가 있으니까 언론인들이 그냥 남아있게 해달라』 고 사회자에게 부탁.
노대표는 『국민들 사이에 쌓여진 뿌리깊은 갈등과 반목이 국가적 위기로 나타난 이 시대적 상황에서 깊은 사색과 숱한 번뇌를 해왔다』 면서 『국민으로부터 슬기와 용기와 진정한 힘을 얻을 수 있는 위대한 조국을 건설하기 위해 비장한 각오로 역사와 국민 앞에 서게 됐다』 고 피력.
그러나 이때까지 참석자들은 노대표의 구상이 대통령후보 사퇴와 새 헌법에 의한 정부이양선이 될 것이라고 생각했으나 노대표가 곧바로 『국민적 화합을 이룩하기 위해 대통령직선제를 택하지 않을 수 없다』 는 폭탄선언을 하자 자신의 귀를 의심한 듯 노대표의 얼굴을 순간적으로 쳐다보고 깜짝 놀라는 표정.
이어 김대중씨 사면·복권, 언론기본법 폐지등 구상을 계속 발표하자 회의장은 숙연하고 정적.
특히 노대표가 『나의 제안이 관철되지 않으면 대통령후보와 대표위원직을 포함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겠다』 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자 참석자들은 침통하고 상기된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으며 일부 참석자들은 눈이 충혈 되기 시작했고 김정례의원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닦기도 했다.
노대표가 17분간에 걸쳐 자신의 폭탄적인 구상을 발표하자 박수가 터져나왔고 잠시동안 침묵이 계속됐다.
노대표는 이어 『모두 한자리에 모여 결정한 것은 아니지만 나의 충정을 알고 애국심을 바탕으로 논의해달라』 고 한 뒤 사회를 임방현중앙위의장에게 맡기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노대표는 이어 참석 중집위장들과 일일이 악수를 나눴는데 참석자들은 몸둘 바를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악수를 교환.
노대표는 회의장 밖으로 나와 기자들이 『잘 하셨습니다』 고하자 『이제 발가벗었다』 면서 홀가분한 표정.
한편 이날 당사에는 시민들의 격려전화가 쇄도.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의 6·29 시국수습안은 발표직전까지 철저한 보안에 붙여서 행정부내에서는 전혀 눈치를 채지 못한 듯한 인상.
수습 안이 발표된 29일 아침까지도 청와대 비서실 주변을 비롯한 관가에서는 내용에 대해 함구일변도였는데 28일 상오 조찬을 겸해 열린 당정회의에서도 이 문제는 거론이 안됐다는 후문.
그러나 한 소식통은 시국수습안이 야권에 의한 6·10국민대회 이후 본격적으로 검토되기 시작해 노대표가 고위층의 사전내락을 받았을 것이라고 추측.
29일 발표된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의 「시국수습특별선언」 이 사전에 고위층의 「내낙」 을 받은 것인 지의 여부를 놓고 정가에선 관심이 집중.
여권일부에선 노대표가『이 건의가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대표위원직을 비롯한 모든 공직에서 사퇴하겠다』고 밝힌 것은 일종의 「폭탄선언」 으로 자신의 독자적인 결단임을 강하게 시사하는 것이라고 해석.
그러나 다른 일각에선 이 같은 중대사안이 어떻게 사전 협의 없이 발표될 수 있겠느냐며 적어도 고위층의「사전양해」 는 얻지 않았겠느냐고 추측.
이와 관련, 정부의 한 고위소식통은 노대표가 내용 하나하나를 일일이 보고하지는 않았지만 직선제, 사면·복권등 핵심부분에 대해서는 사전협의가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는데 노대표가 주말에 청와대를 다녀갔던 것으로 알려져 더욱 이 사실을 뒷받침.
한편 이날 상오9시20분쯤 예정에 없던 청와대수석회의가 소집됐는데 이 자리에서 김윤환정무제1수석비서관이 노대표의 발표내용을 상세히 보고.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은 최근 빈번히 열린 당의 회의는 임방현중앙위의장이나 이춘구사무총장에게 맡기고 대표 위원실에서 혼자 깊은 상념에 잠겨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되는 등 몹시 고민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노대표는 지난 21일의 의원총회이후 대통령으로부터 시국수습에 관해 전권을 위임받고 획기적인 방안을·독자적으로 구상해왔다는 후문이다.
노대표는△올림픽은 어떠한 경우도 성공적으로 치러야 한다 △민주화조치를 포함해 평화적 정권교체는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현재와 같은 경제·사회발전은 지속되어야 한다는 세 가지 점에 국민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고 판단하고 이 같은 기조하에 수습방안을 구상한다고 이병기보좌역이 설명.
노대표는 그동안 전대통령이 야당대표와 종교계 지도자 등을 만나는 동안 독자적으로 각계인사의 의견을 들었고 이를 토대로 빈번하게 대통령과 수습방안을 협의해왔으며 그 결과 27일 저녁쯤 최종 결심을 하게되었다는 후문.
윤길중의원이 일요일인 28일 아침 노대표를 만났더니「최종결심」 을 굳힌 인상을 받았다고 했는데 27일 하오6시부터 10시까지 서울시 출신의원들은 모임을 갖고 12월말 대통령선거와김대중씨의 사면·복권을 결의하고 이를 노대표에게 건의했다고 봉두완의원이 전언.
노대표는 그동안 수습안을 구상하면서 현재의 시점이 개인적 야심이나 정권적 차원에서 대응할 때가 아니라 먼 장래를 내다보는 구국적 차원에서 해결점을 모색해야 한다는 확고한 결의를 다지고 있었다고 측근들은 설명.
노대표는 28일 이보좌역을 집으로 불러 자신의 최종구상을 알려준 후 원안을 정리토록 했고 이에 따라 이보좌역은 하루 온종일 특별선언을 다듬었다는 것.
민추협의장단 희의가 끝난 직후 민정당의 노대표가 「직선제개헌」 「사면·복권」 등의 시국수습안을 밝혔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민주당은 『그게 정말이냐』 고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면서 예상치 못한 수습안에 대책을 마련하느라 부산.
김영삼총재와 김대중의장은 김의장실에서 요담을 나누던 도중 비서진으로부터 이 같은 얘기를 들은 후 김태룡대변인을 불러 야당이 보일 반응에 대해 상의.
잠시 후 밖에 나온 김대변인은 기자들에게 『아직 민정당의 확실한 방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저쪽의 분명한 진의를 안 후에 논평하겠다』 고 즉각적인 성명발표는 보류하는 등 신중한 자세.
민정당의 직선제 수용이 확실하다는 내용을 들고 김대변인이 다시 두김씨의 요담장소로 들어갔으나 두김씨는 계속 신중한자세로 직접 논평을 미룬 채 김대변인에게만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는 다소 조심스런 대변인 논평으로 내도록 지시.
김대변인은 『 「국민이 원한다면」 「필요하다면」 등의 사족이 다소 마음에 걸린다』 면서 의구심을 표명.
김대변인이 논평을 하는 사이 김의장은 말없이 민추협사무실을 빠져나가 동교동자택으로 출발.
이어 민주당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하기 위해 회의실로 가던 김영삼총재는 기자실TV에서 노대표의 수습방안발표가 방영되자 김현규총무, 김대변인과 함께 끝부분만 잠깐 시청.
김총재는 『시국수습방안8개항이 무엇무엇이냐』 고 자세히 물은 뒤 『이는 그동안 7년에 국민들의 피와 땀, 눈물이 가져다준 것』 이라고 환영.
김총재는 『이 시간에도 수많은 민주인사가 직선제를 주장하다가 감옥에 갇혀있고 많은 사람들이 좇기고 있으며 고문에 시달리는가 하면 지금까지 감옥에 갔다온 사람이 얼마나 많은가』 하며 『우리국민에겐 87년이 희망을 안겨줄 수 있는 해가 돼 대단히 기쁘다』 고 말했다.
김총재는 지난번 청와대 면담에서 자신이 촉구, 주장했던 여러 대목을 상기시키며 『이러한 결과는 위대한 국민의 힘이며 현정권으로서도 안할 수 없었겠지만 결심을 내려 반갑다』고 말했다.
김총재는 소감을 묻자『후련하다』 고 피력.
기자들이 『직선제 경우 부출마선언을 한 김의장은 앞으로 어떻게 되느냐』 고 묻자 언급을 회피했고 김총재 측근들은 『당사자에게 물을 말을 왜 총재에게 묻느냐』 고 가로막았다.
직선제 수락등 노태우민정당대표위원이 8개항의시국수습안을 제시하자 동교동계는 보스인 김대중의장이 지난해 발표한 부출마선언과 관련해 미묘한 분위기.
동교동계 의원 및 측근 비서들은 『그 문제를 거론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가 아니냐』 며 언급할 입장이 아니라는 반응을 보이고 있는데 많은 의원 및 비서들은 『지난해 김의장의 부출마선언 요지는 「현 정권하에서는 출마를 안하겠다는것」이므로 내년 2월까지는 유효한 것이 아니냐』 는 반응들.
이용희부총재와 김현수의원은 『어쨌든 약속은 지켜져야 할 것』이라고 피력.
그러나 박영록·이재근의원은 『지금 그런 얘기 할 때냐』 고 했고 권노갑비서실장은 『내가 그 문제에 언급할 입장이 아니다』 고 하는 등 다소 뉘앙스가 다른 견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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