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장수립」낮추는 것이 과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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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노태우 민정당대통령후보의 탄생으로 우리 헌정사상 처음으로 대통령과 집권당의 대통령후보가 공존하는 정치경험을 갖게됐다. 동시에 이는 집권세력이 후계체제를 공식화한 최초의 기록이기도하다.
8개월후의 여권기수교체를 의미하는 노후보의 등장은 또 여권의 육사11기 시대의 계속이라는 관점에서도 조명할 수 있다.
그러나 여권대통령후보지명의 가강 큰 현실적 정치적 의미는 무엇보다도 현행헌법에 의한 정치일정 추진의 스타트라는 점이다.
야당은 물론 사회각계의 강력한 저항에도 불구하고 여권은 4·13조치의 의지에 따라 현행헌법에 따른 정치일정의 첫단계를 강행한 것이다. 김영삼 민주당총재가 말하는 이른바 「돌아오지 못하는다리」 를 건너기 시작한 셈이다.
이에따라 앞으로의 정국에는 많은 미답의 의문들이 깔려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스타트한 여권정치일정의 안정적 추진은 과연 가능할지, 그리고 현직 대통령이 총재로 있는 집권당 대통령후보의 위상은 어떨지, 이런 상황에서 여야관계는 어떻게 전개될지등 커다란 관심사가 허다하다.
전당대회에서 있은 전두환대통령의 치사와 노후보의 수락연설은 내년2월 정부 이양때까지의 후보의 입장과 금후 정치일정의 추진방법을 짐작할수 있는 중요한 시사를 담고있다.
노대표는 연설에서 자신의 위치와 과업을 전대통령의 「위업」 을 딛고 「계속성 속의 개혁」 을 담당하는 것으로 규정짓고 연설문의 전반을 전대통령의 치적을 찬양하는데 할애했다.
연설문에서 노후보가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은 전대통령에 대한 자신의 위치설정과 예의표명임을 쉽게 알 수 있으며 자신의 주장이나 목소리는 아직 크게 내세울 때가 아니라고 판단한 듯한 인상을 준다.
이는 전대통령이 치사에서 『8개월후 청와대를 떠날때까지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으로서의 권한과 책임을 다할것』 이라고 말한 것과 맥을 같이하는 것이다.
따라서 「대통령후보」 란 새로운 지위에도 불구하고 앞으로도 상당기간 노후보는 전대통령 주도의 틀안에서 운신할 수 밖에 없을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앞으로 노후보가 제시할 국정구상이나 대야협상의 성격도 자연 이같은 전제를 바탕으로 유추하지 않을수 없을 것같다.
노후보는 자신의 시대적 사명을 「민주화시비」 의 종식으로 설정하고 이를 양대사이후 합의개헌을 통해 반드시 성취하겠다고 밝혔다. 합의개헌의 방법에 대해서는 야당의 정치권에 큰 변화가 일어나 의원내각제채택으로 귀결될 것이란 전망을 했을 뿐 구체적인 것은 없다.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노대표가 자신의 임기중 개헌을 약속하면서도 90년대의 「균형과 참여의 시대」 를 자신이 이끌어갈 국가목표로 내세우고 있는 점이다.
이는 합법적 절차에 의해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개헌에 의한 임기단축을 스스로 약속해야하는 노대표의 특수한 사정을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합의개헌→임기단축→새로운 선거라는 다음정부의 불가피한 과도적 성격을 의식해 현행헌법으로 대통령에 당선된 후 내각제개헌을 달성하고 계속 집권하겠다는 의지표명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여야협상이나 대학도 결국 이 같은 코스를 밟기 위한 과정으로 보고 있으며 코스 자체를 바꿀 가능성은 배제하고 있다.
때문에 노후보가 『평화적 민주발전을 위해서라면 누구와도, 어떤 주제를 놓고라도 기꺼이 대화할 용의가 있다』 고 적극적인 의사표명을 했지만 4·13철회를 전제조건으로 요구하는 야당측과는 거리가 멀다고 하겠다.
따라서 6·10 양대회가 끝나면 민정당의 적극적인 대화 제의와 야당의 탐색적인 대화제스처로 일단 대화국면이 조성될 수도 있겠으나 대화의 한계는 극히 제한돼 있다고 볼 수 밖에 없고 그 때문에 정국의 앞날은 더욱 예측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노후보로서는 무엇보다 정치일정의 안정적 진행이 필요하고 야당의 참여를 끌어내야 집권의 정당성을 확보할 수 있게된다. 따라서 노후보로서는 우선 대통령선거가 있게 해야하고 김영삼총재와 야당을 선거에 동참시키는 문제를놓고 일대 담판을 벌이지 않을수 없는 형편이다.
그러나 노대표에게는 김영삼씨의 입장을 충족시켜줄 만한 카드도 없고 김영삼씨와 대화로써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안팎의 장애가 너무 많다.
김영삼씨를 움직일만한 4·13조치의 철회나 김대중씨의 사면·복권은 노대표의 재량권 밖일뿐 아니라 이미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없음을 여러번 못박았다.
그렇다고 여야대화가 경실되고 정국긴장이 고조되면서 야권의 체제도전이 계속되는 사태가 되면 정치일정의 안정적 진행이 의심스럽게 될 수 밖에 없다.
자칫 헌정불안사태가 온다면 여권구도 자체가 근본적으로 달라질는지 모른다.
따라서 노후보로서는 다루기 어려운 제약하에서 대야대화를 유지함으로써 정국의 긴장 수위를 낮추는 것이 무엇보다 급한 과제가 아닐수 없는 셈이다.
여권일각에서는 야당의 대통령선거참여 유도를 위해 구체적인 개헌시한을 밝히거나 89년 국회의원선거를 내각제냐 직선제냐의 선택적 국민투표 성격으로 활용하자는 등의 아이디어를 내고있으나 아직 실현성과는 거리가 멀다.
또 대통령 선거법개정을 협상의 대상으로 거론하기도 하나 이미 현행 헌법하에서의 대통령선거불참을 선언한 민주당에 협상의 대상이 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
아뭏든 노대표는 충분한 협상재량을 확보하지 못하고 집권후의 포부도 마음껏 털어 놓을수 없는 한계속에서 야당과 협상을 벌여 선거를 통한 집권을 관철해야하는 겹겹의 어려움속에 서있는 셈이다.
이런 과정에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어떻게 부각시키며 집권역량을 어떻게 축적해 나갈지 관심의 대상이 아닐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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