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시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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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로마제국의 지배자였던 「시저」는 원로원 안에서 동료들의 손에 죽음을 맞았다.
칼로 그를 찌른 무리 속에는 그가 사랑해 마지않던 심복 「브루투스」도 끼여 있었다.
『「브루투스」, 너마저!』라는 「시저」의 명언은 이때 한 말이다.
범양상선의 박건석회장이 자살하자 그 회사 안에서는 『범양의 「시저」를 죽인 「브루투스」는 누구냐』고 하는 얘기가 나돌았다고 한다.
자신이 기용한 회사간부들에게 배신을 느끼며 자살의 궁지에까지 몰려간 박회장의 심경은 대개 헤아릴수 있을 것도 같다.
그가 죽음 앞에서까지 가슴에 품은 원한을 글로 남겼다는 상황이 너무나 참담하다.
그의 유서는 특정한 몇 사람을 지목해서 저주를 하고 있다.
『인간이 되시오. 천벌받습니다』라는 글에서는 뼈에 사무친 원한을 느끼게도 된다.
그는 그 사람을 『사리를 위해서는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회사를 악용하는』 사람으로 규정까지 해놓았다.
박회장은 경영부실에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는 협박도 받았고 또 회사에선 간부들의 연판장까지 돌았다는 소식이니까 창업자로서 여간 심통하지 않았을 것이다.
자기 상전을 배신한 자로 유명한 사람은 터키의 「케말」이다. 그는 자신을 발탁한 「메머드」6세를 나라에서 쫓아내고 나라를 차지했다. 물론 그것은 일부 애국적 행동이란 평가를 받았지만 인간관계에서 배신이었다.
옛날에도 배신자는 많았다. 법가인 한비자는 그 때문에 군주는 신하를 절대로 믿지 말라고 가르치고있다.
본심을 감추고 상벌을 엄히하며 권세를 계속 장악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른바 삼수다.
그런 한비자의 경고는 각박한 인정의 표현이긴 하지만 안전한 처세란 점에서 수긍할 점도 없지 않다.
실제 82년에 지하철 공사장의 부실공사를 폭로하겠다며 금품을 요구하던 회사 인부가 공갈혐의로 구속된 일도 있다.
대낮에 호텔에서 남자와 함께 나오는 여자들의 사진을 찍은후 기관원을 사칭하여 공갈을 쳐 돈을 뜯던 사람들도 있었다.
84년엔 개인이나 기업의 약점을 들추어 공직자와 기업체 간부를 상대로 투서, 협박전화로 금품을 뜯거나 음해를 일삼던 상습공갈범 22명이 검거된 적도 있다.
약점을 잠아서 남을 괴롭히는 인간들의 행태가 아주 흔해지고 있다.
신뢰와 인정의 관계는 찾을길 없고 사람을 죽음으로 몰고 또 죽으면서도 원망을 남겨야 하는 세태인심이 너무 끔찍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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