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가족] 노인 위한 주치의, 건강한 노후 동반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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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림대 의대 노인병클리닉 윤종률 교수

한림대 의대 노인병클리닉 윤종률 교수

모든 국민이 건강관리의 동반자인 주치의를 가질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몸이 불편할 때나, 건강할 때나 건강상태에 대한 평가·상담, 건강증진 방법, 질병 진단·치료 방침에 대한 조언을 구할 수 있는 의사 말이다.

기고│한림대 의대 노인병클리닉 윤종률 교수

주치의의 세 가지 핵심 요소는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확인하는 ‘포괄적 의료’, 건강할 때부터 죽음에 이르기까지 함께해 주는 ‘지속적 의료’, 가장 적절한 치료 방침을 함께 고민하고 결정해 안내하는 ‘조정적 의료’를 제공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주치의 제도가 없다. 사실 현 의료체계에선 의사나 환자 모두의 입장에서 주치의 제도가 꼭 필요한 것 같지도 않다. 조금만 시간과 노력을 기울이면 대부분 자기가 원하는 유명한 전문의를 찾아가 진료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나라는 참 편리하고 좋은 의료체계를 가진 것 같다. 과연 그럴까. 노인의 경우는 다시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 노인의 절반은 3개 이상의 만성질환을 앓고 있다. 노인병 특성상 증상이 애매해 정확히 진단하는 것도 어렵다. 두드러진 질병이 없더라도 어떻게 건강관리를 해야 할지 갈피를 잡기 어렵다. 고혈압도 있고, 관절염도 심하고, 골다공증·불면증도 있다. 당뇨병도 있고, 심장도 안 좋다고 하고, 폐기능도 나쁘다. 우울증, 치매 증상도 생긴다. 갑작스러운 어지럼증도 생기고, 소변 보는 것도 불편해진다.

어떤 의사를 찾아가야 하나. 용하다는 전문의를 찾아다니다 보니 며칠에 걸쳐 대여섯 군데 병원을 돌아다닌다. 진료비는 늘고 처방 받은 약을 보니 하루에 먹어야 할 약이 20개도 넘는다. 열심히 약을 복용하지만 오히려 더 기운이 없고 정신도 흐려져 건강이 더 나빠지는 것만 같다.

그래서 노인에겐 전반적인 건강 상태를 잘 이해하고, 꼭 치료가 필요한 질병과 그렇지 않은 건강 문제를 구분해 줄 의사가 반드시 필요하다.

물론 노인주치의 제도가 올바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세 가지 전제조건이 있다. 첫째로 노인병 전문의사를 비롯한 노인 전문 의료인력이 많아져야 한다. 노인 환자는 질병이 복잡·다양하고 합병증 위험도 높다. 게다가 일상생활에서 기능장애가 생기기 쉽고, 치료 반응이 늦거나 부작용 위험이 크다.

둘째로 건강보험제도에서 진료시간이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 노인환자 진료는 일반적인 환자면담법이나 진찰로는 확인하기 어려운 부분이 매우 많다.

셋째로 지금은 사라진 방문진료(왕진)를 되살려야 한다. 앞으로 노인환자에 대한 의료서비스는 계속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주치의의 방문진료는 노쇠한 환자의 부담을 줄이고, 이동 중 생길 수 있는 질병의 악화를 예방할 수 있다.

노년기 건강관리의 질적 수준이 한 단계 높아지고 급증하는 노인 의료비를 줄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방법인 노인 의료 활성화와 노인 주치의 제도 시행을 위한 국민적 요구와 정책적 뒷받침이 시급한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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