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약 요구로 농민들 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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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요즘 영농회원들이 모이기만 하면 농지임대차관리법에 대한 이야기만 한다』(경남 김해시 삼정동 이백이씨·58) 농지임대차관리법의 10월 시행을 앞두고 부재지주들의 대리경작농가에 대한 농토임대계약해약요구가 크게 늘고 있는가하면 재계약기피·매각움직임이 두드러져 그 동안 남의 땅을 부쳐온 농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부재지주들의 이 같은 움직임은 농지임대차관리법이 시행되면 현행 소작 배분 비율인지주 40%, 소작농 60% 또는 50%대 50%에서 논의 경우 부재지주가 20%, 밭은 10%밖에 배분받지 못하고 무거운 세금까지 부과될 것이라고 전해진데서 나온 것으로 농토를 임대경작 해 온 영세농민들이 올해부터 당장 농토를 잃고 생계유지를 위해 도시로 전출하는 등 이농현상이심해질 것으로 보인다.
또 실제 경작능력이 없는 부재지주들이 씨앗만 뿌려놓고 농사를 제대로 짓지 않을 경우 식량증산에도 차질을 빚을 우려마저 있다.
농지임대차관리법은 농토를 실제 경작하는 농민들을 보호하고 복지농촌을 건설하기 위해 정부가 마련, 작년말 정기국회를 통과했으나 아직 구체적인 시행령이 나오지 않아 부재지주·대리경작 농가가 모두 궁금증에 싸여있다.
현재 비농민 소유농지는 전체농지의 19.3%인 41만3천정보(헥타르)다.
◇당약 요구 = 경기도 화성군 오산읍 내삼미리 이모씨(52)는 83년부터 이모씨(67·오산읍)의 논 2천8백평을 대리경작 해 왔으나 지난 연말 땅주인으로부터『직접 농사를 지을테니 땅을 돌려달라』는 연락을 받았다.
이씨는 그 동안 논 1백50평당 1년에 쌀8말씩을 땅주인에게 주어왔다.
또 이 마을 최모씨(60)도 지난 연말 지주 김모씨(47·오산읍)로부터 그 동안 경작해오던 논9백평을 돌려달라는 통고를 받았다.
85년부터 1백50평당 쌀8말을 주며 홍모씨(40·경기도수원시)의 논 1만평을 대리경작 해온 이모씨(67·경기도용인군남사면원암리)는 1월초 홍씨로부터 『농사를 그만 두라』는 통고를 받았다.
이농한 이웃주민 윤모씨(55)의 논8백평과 밭1천4백평을 경작해온 박모씨(53·경북 경산군남천면삼생동)는 최근 윤씨로부터 『농지임대차관리법이 시행되면 귀농, 직접 농사를 지을테니 땅을 돌려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박씨는 『그 동안 소출의 50%를 농지임차료로 주고 땅을 부쳐먹었는데 이젠 그나마도 할 수 없게 되었으니 도시로 나가 막노동이라도 해야될 판』이라고 말했다.
강원도원성군흥업면 박모씨(30)의 경우 5년전부터 차모씨(51·원주시)의 논9백평을 경작해 왔는데 지난해말 농지임대차관리법이 국회에서 통과된 직후 지주에게서 농지반환요구를 받았다.
또 서울 사는 이모씨(57)의 논 4천5백평을 경작해온 같은 마을 정모씨(57)도 이씨의 요구로 농지를 반환해야할 형편.
◇매각 움직임 = 부재지주 김모씨(42·여·대구시)의 논3천평과 밭1천평을 경작해온 경북 경산군압량면용암동 장모씨(55)는 며칠 전 지주가 찾아와 『농지임대차관리법이 시행되기 전에 땅을 팔아야겠다』고 말했다며 걱정스런 표정.
6년 전부터 소출의 50%를 지주에게 주며 대리경작해 온 장씨는 『그 동안 이 땅 덕분에 2남3녀를 고등학교까지 졸업시켰는데 전답이 팔려버리면 농사를 짓고싶어도 못 짓게될 것 같다』며 한숨을 쉬었다.
전북금제군공덕면동계리 최모씨(67)는 『대부분의 부재지주들이 땅을 팔려고 내놓고 있다』고 밝히고 이 때문에 지난 해 봄까지 1천2백평당 쌀 2백∼2백2O가마이던 논 값이 올 들어서는 1백80∼2백가마로 떨어졌다고 말했다.
경기도금포군계양면 금우부동산 김을용씨(53)도 『올해 들어 논을 팔려는 서울·인천 등지의 부재지주들이 부쩍 늘어났으나 사려는 사람의 발길이 끊어져 거래가 거의 없는 실정』 이라고 밝혔다.
◇종전배분율 고집 = 강원도 강능·명주지방의 부재지주들은 대리경작자에게 농지임대차관리법이 시행되더라도 내면적으로는 종전처럼 소출의 50%를 농지임차료로 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김모씨(55·강릉시)의 논1천2백평을 5년째 대리경작하고 있는 강릉시 송정동 최모씨(53) 는 지난연초 지주가 찾아와 『법이 시행되더라도 농지임차료를 종전처럼 내지 않으면 농사를 짓지 못한다』고 통고하더라고 밝혔다.
◇재계약기피 = 전북 정읍군신태인읍 배모씨(33)는 그 동안 부재지주의 논2천7백평을 경작해 왔는데 땅 주인이 재계약을 기피, 올해 임대차계약을 맺지 못해 아직 영농준비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또 김모씨(50·전주시) 의 논 4천평을 경작해오던 이 마을 김모씨(59)도 배씨와 같은 형편이다. <제2사회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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