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노선정리가 "발등의 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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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18일로 창당2돌을 맞는 신민당은 내우외환의 심각한 시련에 빠져있다.
개헌정국은 막바지 중대고비로 접어들었고 여권에선 단독개헌의 고삐를 바싹 잡아당기면서 야당을 공략하려드는데도 신민당은 당내문제로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민우 파동」이 표면상 가까스로 수습되긴 했으나 그 상처와 여파가 아직 채 가시지 않은 상태여서 창당기념일을 맞고도 당내 분위기는 을씨년스럽기만 하다.
신민당은 어려운 여건에서 2·12총선을 대승으로 이끈이래 집권여당의 호헌철벽을 깨뜨리고 개헌을 유도해 낼 때까지는 기세가 대단했으며 국민들의 성원도 컸다.
사실 집권측으로부터 개헌을 도출해내고 광주사태를 비롯해 숱한 성역을 무너뜨린 점등은 신민당의 공로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지금은 직선제만 되뇔뿐 전략부재의 상태로 장외·원내 투쟁의 길이 모두 봉쇄된채 내연의 불길은 자칫 당의 한모서리가 떨어져 나갈지도 모르는 난처한 지경에 처해있다.
신민당이 앞으로 1년남짓의 기간 중 부닥쳐야할 과제는 곧 있을 것으로 예상되는 소위 합법개헌, 즉 정부·여당의 개헌안 단독강행처리에 대한 대처에서부터 정계개편의 가능성, 국민투표, 13대 총선거등 첩첩이 쌓여있다.
신민당이 이처럼 중병을 앓게된 이유는 크게 △3각체제로 이뤄진 지도체제의 취약성과 △그에따른 통일된 전략의 부재 △재야측과의 불분명한 관계 △그리고 야당의 여러가지 고질적 병리현상이 복합돼있기 때문인 것으로 풀이되고 있다.
신민당이 이민우총재-김대중-김영삼씨등 3군에 의해 실질적으로 이끌려지고 있음은 잘 알려진 바다.
총재단회의·확대간부회의·정무회의등 각종 회의가 수시로 가동되고 있으나 3자 결정을 추인하는 선에 불과하다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문제는 이들 세 사람이 기회있을 때마다 「단합」을 강조하지만 「단합」 강조 횟수만큼이나 「삐걱」소리도 만들어왔다는 점이다.
당의 현지도체제가 「이민우구상」의 파동속에서 거의 공백상태에 빠져버린 것도 이러한 취약성이 빚은 혼선과정이라 할 수 있겠다.
아울러 이는 일사불란하고 통일된 전략수립을 불가능케해 서울대회무산이후 당논을 수없이 번복하는 등 갈팡질팡하는 모습을 보여줄 수밖에 없었다.
재야와의 어정쩡한 관계 역시 신민당의 운신을 제약해온 커다란 한 원인이다.
12대총선에서 재야와 운동권은 신민당 압승에 결정적 역할을 해줬으나 곧바로 신민당의 현실적 부담으로 바뀌어 강경투쟁 일변도를 강요해왔다.
결국 재야에 발목이 잡혀 체제내 정당으로서 뿌리를 내리는데 큰 장애요소가 된게 사실이다.
야당의 오랜 병폐로서 지금도 지적되고 있는 것은 정책빈곤, 비생산적 계보정치, 사꾸라논쟁등을 들수있다.
정책부분은 인적·물적 여건의 미흡이라는 어느 정도이해가 되는 대목도 있긴 하나 정책개발엔 아예 눈을 돌리려 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소속의원이 90명이나 되는데도 이들을 효과적으로 조직·가동시켜 당차원의 안을 만들어내는 일을 제대로 못하고 있다.
『2년동안 「지도자」들 마이크 잡게 하느라 멍석만 들고 다녔다』는 한 초선의원의 푸념은 이러한 신민당의 빈곤을 그대로 말해주고 있다.
계보정치 또한 신민당이 물려받은 야당의 고질중 하나다. 물론 보수정당에 파벌이 있다는 것은 이상할 것도, 크게 탓할 것도 아니긴 하다.
그러나 당내인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생산적이라기보다는 소모적이며 파쟁적인 면이 더 많이 비치고 있어 빈축을 사고있다.
이밖에 강경 발언과 행동만이 야당성을 인정받는 선명제일주의도 씻어내야할 해묵은 병폐로 꼽히고 있다.
타협과 협상은 의회주의 원리임에 틀림없는데도 야합으로 몰리기 일쑤고 합리에 입각한 화해의 제스처도 자칫 「사꾸라」의 낙인이 찍히면 정치 생명까지도 위험을 받는 이상한 풍토가 어느새 자리 굳힘했다.
신민당이 안고있는 이 모든 문제들이 물론 신민당만의 책임은 아닐 것이다. 우리의 정치풍토와 권위적 집권측에 의해 조성되는 정치환경, 야당의 영역과 의사가 존중되지 않는 의회운영등이 야당의 등을 밀어붙인 점도 간과할 수 없다.
결국 이런 악조건 아래서 살아남고 지지기반을 넓히고 현대정당의 모습으로 탈바꿈하는 것이 신민당의 숙명적 과제인 셈이다. 특히 산업화에 따른 사회 각분야의 급속한 변화와 수준상승을 야당이 어떻게 따라잡느냐 하는 문제는 더 이상 외면할수 없는 절박한 과제로 되고 있다.
당장 현실적으로 신민당은 심각한 당내 갈등을 수습하고 급변할 개헌정국에 대처하지 않으면 안된다. 개헌과 선거로 이어질 앞으로 수개월이 신민당의 명운을 좌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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