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우구상」설땅 좁아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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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지난해 12월24일 이민우신민당총재의 삼양동 선민주화 발언에서 불이 붙어 온양잠적사태까지 빚었던 신민당의 개헌노선을 둘러싼 20여일간의 당내 분규는 15일 이총재-김영삼고문, 김대중-김영삼씨의 연쇄양자회담으로 일단 수습됐다.
그동안 내각책임제 수용인상을 주었던 선민주화논이 기실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게 이총재의 해명이었고 김영삼씨가 이를 받아들여 직선제가 불변의 당론이며 최우선 과제임을 재천명한 것이다. 이러한 이-김 2자회담의 내용은 이날 하오 김대중-김영삼씨의 김-김회담에서도 받아들여질 것으로 보인다.
이에 따라 신민당과 이총재 두김씨 3자는 「직선제관철」이라는 하나의 깃발아래 다시 뭉친 것처럼 바깥으로 과시하게 되고 당체제 정비문제같은 것도 일단 접어두게 됐다. 그러나 이것이 본질적인 수습이 될지는 아직 지켜봐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이번 당내분규의 근본원인은 개헌전략에 있어서 협상노선과 투쟁노선의 대립이었다고 할수 있는데 이러한 노선상의 대립이 완전히 해결됐다고 볼수 있느냐는 의문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이 소회담에서는 직선제의 관철을 당논으로 재확인하면서 이총재의 민주화7개항은 전혀 언급되지 않았다.
이것은 사실상 직선제-민주화의 병행추진의 포기이지만 대여협상의 여지를 아주 닫아버린 것이라고는 할수 없다.
다만 그와 같은 협상이 마치 내각제를 수용하는 듯한 「오해」를 준다면 그것은 단연코 배제하겠으며 민주화의 추진은 어디까지나 직선제 관철이라는 선행목표와의 관련하에서만 고려될수 있는 것이라고 엄밀하게 해석하겠다는 입장이다.
때문에 신민당의 협상폭은 당초 제시된 「이민우구상」이 사실상 거의 취소되는 결과가 됐다.
그렇지만 협상으로 나가는 길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구속자석방, 사면·복권, 언론자유등의 조치가 선행이 된다면 국회의원선거법과 지방자치제에 관한 협상은 이뤄질수 있다는 여지마저 없어진 것은 아닌 것이다. 그러나 선민주화론이 가진 신축성있는 전제외에서의 협상이 아닌, 직선제관철과 연관지은 이같은 협상에 민정당측이 어느정도 인내와 열의를 가지고 응할지 알수 없다.
더욱 주목해야할 점은 이번 노선대립사태의 수습과정을 통해 이총재가 추구했던 독자영역은 오히려 축소된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총재는 독자노선을 추구할만한 실질적인 원군을 당내에서 거의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상도·동교 양대계보의 협공앞에 자신의 입장을 후퇴시킬 수밖에 없었다. 따라서 앞으로 이총재가 계속 협상노선을 밟아나가더라도 그것은 상도동의 후원아래서만 가능하게 될 것으로 전망할 수 있다. 따라서 이같은 축소된 이총재의 입장이 대여협상에서 어느 정도의 구실을 할지도 의문이다.

<방문잠근채 단독밀담>
이총재와 김고문은 이날 2주일여만에 외교구락부에서 대좌했는데 이총재는 먼저 와있던 김고문에게 『아, 오랜만이오. 산에서 얼마나 고생했소』라고 했고 이에 김고문도 『오랜만입니다』며 간단히 인사했다.
두사람은 처음 만나는 순간엔 기자들을 의식했음인지 웃으며 악수를 나눴으나 자리에 앉자마자 곧바로 보도진을 물리치는등 다소 굳은 표정으로 서먹한 분위기여서 일련의 사태로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를 느끼게 했다.
두사람은 곧바로 방문을 걸어잠근채 단독밀담에 들어갔는데 이날 회담장에는 양쪽 비서팀 거의 전원이 나왔고 동교동계의 비서진 1명도 나와 있었다.
먼저 와 기다리는 동안 김고문은 기자들이 『잘 될것 같으냐』고 묻자 『나야 모르지, 인석(이총재)의 이야기를 들어봐야지』라고만 답변.

<김고문과 일문일답>
이총재와 김고문은 2시간20여분동안 밀담을 나눈후 홍사덕대변인을 불러 10여분에 걸쳐 발표문을 작성시킨뒤 기자들에게 발표.
발표가 끝나자마자 이총재는 자리를 떴고 김고문이 기자들과 잠시동안 일문일답을 나눴다.
―병행투쟁을 수용한 것인가.
『병행이란 용어가 어색한 것이다. 직선제와 민주화는 따로 떨어질수 있는 것이 아니며 따로 떼어 생각할 것도 아니다. 이번에 이 두가지가 마치 별개의 개념인듯 사용돼 여러가지 오해의 소지를 낳았다』
―발표문을 보니「이민우구상」이 완전히 철회된 인상인데….
『그동안 민주화 주장만 부각시키다보니 자연스럽게 내각책임제와 연관되는 오해만 생겼다. 또 신민당은 직선제 주장만을 하고 다른 것은 안하는 것처럼 보여왔다』
―그러면 「이민우구상」이 완전 백지화된다는 뜻인가.
『이민우구상이라는 용어자체가 우습다. 언제 그런 것이 있었느냐. 신민당은 이총재 발언 이전으로 돌아간다.』
―앞으로 여야간의 대화는 어떻게 할 것인가.
『필요하면 하지. 그렇지만 내각책임제 협상을 위해서는 할 생각이 전혀없다.』
―인석이 굴복한 것 같은데 총재직을 사퇴할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는가.
『쓸데없는 소리…』
―오늘 발표사항을 김대중씨가 흔쾌히 동의하리라 생각하는가.
『동의하지 않을 이유가 하나도 없다. 인석이 우리 두사람에게 사과까지 했으니 직선제당론에는 변화가 없는 것이다. 또 내각책임제 협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못박았다.』
―선거법등의 여야협상문제에 대해선 어떻게 할 것인가.
『여권이 즉시 조건없이 민주화를 하고 난 다음에나 생각할 수 있는 문제다. 굳이 지금 시점에서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 다음에야 총무 또는 몇사람의 대표가 협상에 나설 수도 있는 것이다.』
―인석이 합의문에 흔쾌히 동의했는가.
『합의가 됐으니 같이 발표한 거지.』
―노선변경 운운한 홍사덕대변인의 인책문제가 거론됐는가.
『전혀 거론되지 않았다. 그 문제는 오늘 얘기하지 않는게 좋겠다. 이번일과 홍대변인문제를 관계시키지 않기위해 그 얘기는 내주에 할 것이다. 다만 나도 무슨 생각을 갖고 있다.』
―앞으로 정국이 어떻게 변모할 것으로 보이는가.
『오늘은 이 정도만 하자. 법주사 스님으로부터 묵언을 배웠는데 내가 오늘 너무 많은 얘기를 했다. 앞으로 국민들에게 용기를 불어넣는 직선제를 관철시키기 위해 싸울 것이다. 내가 산행을 한 것도 민주화를 위해 절대 굴하지 않고 싸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잠시 마음가 괴로웠던 것도 사실이었다.』
―합의문 내용중에는 죄송·사과·해명등 이총재로선 하기 어려운 내용들이 들어있는데 앞으로 비주류측에서 총재 인책문제를 들고나올 것 아닌가.
『쓸데없는 소리 그만하자. 당에서 누가 문제를 삼겠는가. 그런데까지 신경쓸 것 없다. 앞으로 힘을 합쳐 일사불란하게 잘해나가야지. 언제나 민주주의에는 다리를 붙잡는 사람이 생기는데 때로는 이를 뿌리치기도 하는것 아니냐』
―앞으로 일사불란한 대여투쟁의 전면에 인석을 내세울 것인가.
『그렇다.』
―그러면 언제까지 내세울 것인가.
『그만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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