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현대판맹모」가 부른 참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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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겨울방학을 며칠앞둔 지난해 12월초. 서울강남의 사립신흥 명문A고 교무실.
깔끔한 차림의 40대부인이 30대의 B교사(37)앞에서 울음을 터뜨렸다.
『중1까지만해도 반에서 1,2등만 하던 아인데…. 정신이상이라니 이게 어떻게된 일입니까.』 2학년×반 C군(17)의 어머니는 담임B교사가 지켜보는데서 체면이나 자존심같은것을 허물어뜨리고 있었다. 『현재 C군의 정신상태로는 더이상 정상적인 학교생활을 할수 없다고 판단하고 오시라고 했읍니다.』
충격이 약간 가시자 B교사는 휴학과 일정기간의 전문의치료를 권했다.
C군의 정신이상증세는 이보다 한달쯤전인 11월에 숨길수 없이 나타났다. B교사담당인 영어시간이었다. 한사람씌 불러 읽히기를 시키던 B교사가 혼비백산한 것은 C군을 호명한 직후였다. 『C, 이시간이 무슨 시간이야.』 C군은 엉뚱하게도 국어교과서를 펴놓고 행간에 열심히 줄을 긋고 있었다. B교사는 여느때처럼 교편으로 C군을 한 대 때렸다. 바로 그 순간이었다. C군이 손에 볼펜을 움켜쥐고 B교사의 얼굴을 찌르러고 달려든것은…. C군의 눈동자에는 야릇한 살기까지 감돌았다.
B교사가 얼떨결에 몸을피하는 순간 C군은 잽싸게 교실을 빠져나가 교문쪽으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B교사가 뒤좇아 갔을때 C군은 교문앞 차도에서 지나가는 택시를 세워놓고 무엇인가 승강이를 벌이고 있었다.
『학교성적이 갈수록 떨어지자 무력감에 깊숙이 빠져든 C군이 견디기 어려운 부모의 기대에 짓눌려 정신질환을 일으켰던 것입니다.』
C군의 lQ는 1백20. 최근들어 눈동자에 초점을 잃기시작하기전 까지도 총명해보이는 수재형. 그러나 성적은 1학년때는 학급에서 20위권. 2학년이 되면서 30위권으로 밀려나기 시작했다. 『2학년초부터 가끔 이상한행동을 했어요. 수업시간에 질문을 받으면 괜히 얼굴을 붉히고, 머리를 긁기도 하면서 안절부절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평소 성격이 내성적이어서 그러려니 생각하고 지나쳤지요. 그런데 2학기에 들어서면서 노골적인 정신이상증세를 보였읍니다.』
『영어·수학등 자신이 없는시간이면 수업중 슬며시 일어나 교실을 빠져나가려했고, 담당교사가 제지하면 욕지거리를 하면서 대드는 제스처를 쓰기도 했어요. 그때마다 교무실에 불러다 타이르기만 해봤죠.』 B교사는 C군의 증세를 이렇게 설명했다. 『명문대학에 보내야겠다는 욕심으로 아이를 강북에서 강남으로 옮긴것이 후회스럽군요.』 어머니도 B교사의 말을이미 알아들었다는듯 침울한표정으로 고개를 떨구었다.
C군이 강북의 P중에서 강남의 Q중으로 전학한것은 중학교 2학년초. 명문대에 보내기 위해서는 좋은 학군의 고교를 배정받아야한다는 욕심에서였다. 그러나 중도의 억지전학 부작용은 금방 나타났다. 「현대판 맹모」는 쓰디쓴 좌절에 빠져들기시작했다.
2학년 1학기말 고사때였다. P중에서 1, 2위를 다투었던 C군의 성적은 10위권으로 뚝 떨어졌다. 내성적인 C군으로서는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면서 원래 성적을 유지하기가 힘들었던 것이다. 더구나 Q중학생들의 성적은 강북P중을 훨씬 앞질러가고 있어 C군은 무력감에 빠지기 시작했다.
『이때부터 아이가 비뚤어지기 시작했어요. 평소 온순했던 아이가 아버지가 성적이 떨어지는 것을 추궁하면 버럭버럭 신경질을 내면서 덤비고…』 어머니는 지금에야 알았다는듯 말했다.
Q중 졸업후 A고에 진학했으나 C군의 성적은 향상되지않았다. 갈수록 끝없이 떨어지기만 했다. 『내신성적이떨어지기 시작하니까 속이 타더군요. 자존심이 강한 아버지는 「애비 망신시킨다」며 매질하는 일이 잦아지기 시작했고요.』 C군부모는 요새같으면 고득점자라야 넘볼수있는 명문대출신. 아버지는 유수한 기업의 중역이다. 『어느 비오는날이었어요. 차라리 집을 나가라」는 아버지의 꾸중을 듣고는 밤새 빗속을 헤매다 파출소에서 밤을 새운 일도 있었읍니다.』 정신과의사를 찾은 어머니는C군의 자초지종을 얘기했다.
겨울방학이 되면서 휴학한 C군은 정신과의사를 찾아 통원치료를 받고있다.
차츰 안정을 찾기 시작했으나 완쾌에는 1년쯤 걸린다는 진단.
『대학진학을 지상목표로 하는 인문고에서는 흔히 있는 일입니다. 병원 치료를 받아야할 정도로 심각한 애들이 한학년에 10여명에서 심할때는 20명을 육박하는 경우도 있어요. 신경이 날카롭거나 가벼운 정신불안을 보이는 학생은 물론 그보다 훨씬 많죠.』 B교사는 거주지를 억지로 옮겨가며 소위 명문고에 들어온 학생중에 이런 경우는 더많다고 했다.
『C군을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그같은 케이스는 많습니다. 보통을 넘는 부모의 최고의식·선민의식이 C군을 병들게 한 것입니다.』 정신과전문의 정동철 박사의 진단이다. 『인간이 인간으로서 성숙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체험하고 넘어 가야하는 단계가 있읍니다. 10대 후반의 경우 이성 문제도 있고, 친구·친지와 어울리는 문제도 그런 것입니다. 성적에만 매달려 이런 것들을 차단 당하면 결과는 정신적 질환으로 나타날 수밖에 없읍니다.』 정 박사는 더구나 부모가 명문대학이란 목표를 정해놓고 모든 것에 앞서 그것만에 집착하면서 중학교 또는 국민학교에서는 잘했는데 왜그러느냐고만 다그치면 오히려 성적은 갈수록 내려갈 수밖에 없으며, 악순환은 계속돼 정신적 파탄상태가 온다고 지적했다. <김창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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