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의 대화와 타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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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막바지 정기국회가 야당의 불참으로 파행 운영되면서 헌특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가 국민의 지대한 관심사였다. 어렵사리 만들어 놓고 단 한번도 정상 가동을 못한 채 18일까지의 시한을 넘기지 않나 하는 우려에서였다.
그러나 여야는 16일 극적으로 대표 회담을 갖고 헌특의 재개 및 시한연장에 합의함으로써 가사 상태의 헌특은 일단 재가동의 실마리를 찾게 되었다.
이것이 대결로만 치닫던 정국을 대화 국면으로 반전시킬 계기가 될지는 아직 불확실하지만 최소한 급한 불은 껐다는 느낌이다.
여야 대표간의 합의만으로 헌특의 앞날을 점칠 수 없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총재의 대표회담 참석은 두 김씨와의 사전 협의 없이 독자적인 결단으로 이루어진 것 같다. 신민당 내부의 복잡한 사정으로 미루어 대표회담의 합의사항을 당론으로 확정짓기까지에는 상당한 진통과 우여곡절이 예상되기는 한다.
더우기 이 총재의 당내 위상과 관련, 지도력에 대한 논란이 분분한 때라 이번 합의가 엉뚱한 역작용을 부를 가능성도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보면 대표회담의 성사는 양측의 시간 벌기 작전의 일환이란 측면도 있다.
민정당으로서는 내각책임제 개헌의 관철에 앞서 마지막 순간까지 최선을 다한 모습을 국민 앞에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야당의 장외화로 인한 부담을 덜어 보겠다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야당으로서도 이른바 집권당의 「동계작전」의 예봉을 피함으로써 정치적인 파국을 막고 개헌정국을 판가름할 시기를 내년 봄쯤으로 미루어야 할 필요성을 절감했음직하다.
여야의 정략이나 계산이 어떤 것이건 이번의 극적인 회담이 정국타개의 돌파구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국민들은 내각 책임제건 대통령 직선제건 일방 통행식으로 성취될 수 있는 길은 없다고 확신하고 있다. 여당 일각에서 「합법 개헌」이란 구상이 비춰지기도 했지만 국민들의 승복을 받을 수 있는 개헌이 국회 안에서의 의석만으로 좌우될 수 없다는 것은 누누이 지적해 온 바다. 정치의 상대는 국민이지 여야 관계로 설명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여당이 무리를 해서 국회에서 개헌안을 처리한다고 해서 이 나라 정치의 만성적 불안요인인 정통성 문제를 극복하기 어렵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 못한다.
야당의 주장대로 국민의 지지라는 아전인수격의 자만심만으로 직선제를 관철할 수 없다는 것 또한 엄연한 현실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합의 개헌 말고 다른 길이 있을 수 없다는 점을 입이 아프도록 강조해 온 것이다.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대통령 중심제니 내각책임제니 하는 권력구조 문제는 1차적인 관심사는 아니다.
이 땅에 참다운 민주주의의 뿌리를 심어 불화와 갈등을 신뢰와 풀어 가는 전통을 수립하자는 것이 국민 모두의 열망인 것이다.
야당의 서울대화 저지에서 정부-여당의 힘은 여실히 증명되었다.
그러나 힘에는 한계가 있으며, 힘의 사용에 정당성이 부여되기 위해서는 정치운영의 공정성, 인권보장 등을 통해 민주화에 대한 실천의지가 선행되지 않으면 안 된다.
바로 거기에 지금의 어려운 정국을 풀 수 있는 열쇠가 있다.
물론 헌특 시한연장 합의로 앞으로의 정국이 쉽사리 풀리라고는 누구도 보지 않는다. 다만 대화와 타협이 아니고서는 아무런 시국수습의 묘안이 있을 수 없다는 대국적인 인식에 일치했다는 점만으로 국민들은 절망하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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