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적광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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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조상의 얼이 서린 유서 깊은 금산사 대적광전이 기둥 하나 남기지 못하고 불에 타서 없어졌다. 이 어이없는 일을 우리 세대에 저지르고 말았으니, 정말 회한을 금할 길이 없다.
피해액이 1억4천여만원 이라는 추정 발표가 있지만 어찌 돈으로 따질 일인가. 그 수십배, 수백배의 돈으로 다시 짓는다 해도 조상의 손길이 다듬어낸 그 대적광전은 이미 이 세상에 없으니, 마치 밀랍 인형을 대하는듯한 서글픔은 영원히 가시지 못할 것이다.
우리들은 유형 무형의 문화 유산에서 문화민족의 긍지를 찾는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재작년에 쌍봉사 대웅전을, 그리고 이제 금산사 대적광전마저 불태워버렸으니 문화의 사막이 저만큼 보이는 것만 같다. 국제사회에서 고도성장의 기수를 자처하는 우리의 이상이 결코 사막에 빌딩을 짓는 일은 아닐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국보62호인 미륵전에 방화의 흔적이 있었다는 점이다. 사전에 방염처리 했기 때문에 화를 면했다니 천만다행이다.
금년부터 당국은 목조문화재건물 5백여동을 연차적으로 방염처리 한다는데, 아직도 3백90동의 문화재가 성냥개비처럼 화재에 무방비상태라고 한다. 더욱이 내년도 문화재 방화 예산이 1억8천만원밖에 안돼 새해에도 50동밖에 손 쓸 수 없다니 우울한 이야기다.
이번 화재가 방화일 가능성이 짙다고 하는데, 적어도 인간이라면 어찌하여 그런 엄청난 짓을 범할 수 있을까. 문화재를 아낄줄 모르는 이 세태가 안타깝고 부끄럽기만 하다.
이제 다시는 수치스럽고 기막힌 이런 비극을 되풀이하지 말자. 한번 없어지면 다시 만들지 못하는 문화재 보존보다 더 큰일이 왜 그리도 많은가. 국가 당국은 문화재 보존을 위하여 물심양면으로 더 이상 인색하지 말아야 할 것이며, 온 국민도 마음 모아 문화재를 아껴서 유한한 민족의 재산을 길이 지켜나가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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