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프와 국교생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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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한가히 골프 얘기냐-, 할지도 모른다. 바로 그래서 하는 얘기다.
요즘 때없이 인도어 골프 연습장마다 국민학교 학생, 중·고교생이 붐빈다는 신문 기사가 있었다. 까닭이 있다. 지난 10월 문교부가 골프, 볼링, 국궁, 롤러스케이팅 등을 체육 특기 종목으로 지정하고 나서 생긴 현상이다.
물론 그 중에는 골프를 할 수 있는 형편의 학생들도 있을 것이다.
우리 나라에서 골프를 하자면 우선 그 비용을 감당할 단단한 여력이 있어야 한다. 골프채를 장만하는데 적어도 2백만원은 있어야 한다. 그밖에 골프 신발이며 옷이며 그린 피 (입장료), 캐디 피 (봉사료) 등 부대 비용도 결코 푼돈 수준이 아니다.
골프장에 한번 나가자면 그야말로 쌀 한가마니 값은 각오해야 한다.
우리 나라에서 또 하나 특이한 현상은 골프장에 부킹하는 일조차 수월하지 않다. 학생 신분에 평일에 골프채 둘러메고 나가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주말의 골프장 예약은 내노라하는 성인들도 어려운 일이다.
어디 그뿐인가. 골프장은 버스나 지하철 아니면 택시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에 위치하고 있지 않다. 임의로 탈수 있는 교통 편의가 있어야 한다.
이쯤 되면 골프는 누구나 할 수 있는 스포츠는 아니라는 것을 짐작 할수 있다. 「골프」 라는 말에 아무리 「건전한 스포츠」라는 수식어를 곁들여도 그것을 압도하는 불건전한 여건들이 따로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골프가 몹쓸 스포츠고, 한량들이나 즐기는 운동이라고 손가락질하려는 것이 아니다. 그 운동은 그 운동대로 좋은 점도 많고, 즐겁고, 건강에도 좋다. 또 건전한 면도 있다. 대 초원을 거닐며 담소하고 즐기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인가.
문제는 스포츠도 그 사회의 격에 맞아야 한다는데 있다. 하기 좋은 말로 수출의 역군들은 10만원 안팎의 임금을 받으며 땀 흘려 일하고 있는데 한쪽에선 철부지 아이들이 골프 가방 메고 유유히 초원이나 거닐고 있는 것이 보기 좋은 광경은 아니다.
문교부는 명분도 없이 너무 빨리 골프 같은 종목을 특기로 지정했다. 골프 선수가 국위를 빛내는 것도 아니고 올림픽의 메달 종목도 아닌 현실에서 그것을 특기로 장려하면 우리 사회 일각에서 눈 흘기는 것은 넉넉히 있을 수 있는 일이다.
어느 사회나 발전의 단계는 있게 마련이다. 시속도 그와 발을 맞추거나 아니면 반보쯤 앞서면 몰라도 저만큼 앞질러 가면 뒤 처진 사람들은 선망할 겨를이 없다.
골프의 발상지라는 영국에서도 골프는 원숙한 신사들의 스포츠지 초 중고생의 특기 스포츠는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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