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원순 서울시장의 '물 공급 중단'에 경찰, "살수차 5분밖에 못 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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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원순 서울시장의 ‘물 공급 중단’ 선언에 경찰에 비상이 걸렸다. 지금까지 각종 대형 집회 때마다 물대포를 사용해 온 경찰의 관리 방식에 제동이 걸릴 전망이다.

박 시장은 5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해 “경찰이 물대포를 사용할 때 서울시에서 물을 공급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앞으로는 안 된다”고 답했다. 또 “소화전은 유사시 화재에 대응해야 한다. 데모 진압을 위해 그 물을 쓰게 하는 것은 용납하기 힘들다”며 “향후 엄격한 기준을 요구할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집회 때 물대포를 맞고 쓰러져 지난 25일 사망한 고 백남기씨와 관련한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이에 대해 경찰 측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경찰 관계자는 “서울시가 물 공급을 끊으면 살수차는 사실상 무용지물이 된다”고 우려했다.

이유는 이렇다. 현재 경찰이 보유한 살수차에는 4000ℓ의 물이 들어간다. 하지만 연속으로 사용할 경우 5분 정도면 물이 바닥난다고 한다. 몰보급차를 동원하기는 하지만 역시 용량은 4000ℓ다. 이때문에 경찰은 지금까지 살수차를 사용할 때 관할 소방서의 양해를 구해 인근 도로의 소화전을 이용해 물을 보급해왔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청과 서울소방재난본부 간에 ‘응원협정’이 맺어져 있기 때문에 사전에 소화전을 이용하겠다는 협조 공문을 보낸 뒤 이를 사용했다”고 말했다. 사용 후에는 수도사업소를 통해 투입된 물의 양을 측정한 뒤 해당 요금도 지불한다고 한다.

따라서 서울시의 지휘감독을 받는 서울소방재난본부가 물 공급을 차단하면 지금까지의 물대포를 이용한 시위 진압을 사실상 어려워진다는 게 경찰 측의 전망이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11월 민중총궐기 당시 오후 4시30분부터 오후 11시까지 6시간 반 동안 물대포를 사용했다. 하지만 서울시로부터 물을 공급받지 못하면 살수차와 물보급차를 최대한 동원해도 1시간도 버티기 어렵다”고 말했다. 당시 경찰은 총 20만2000리터의 물을 살수했는데, 이 중 12만6000리터를 옥외 소화전에서 끌어다 썼다고 한다.

경찰로서는 급박한 상황에서 매번 물을 채우러 몰보급차가 도심을 이동하기도 어렵다는 입장이다.

일각에서는 물대포 사용이 오히려 시위 현장을 과격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경찰에 따르면 시위 관리에 물대포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2005년 노무현 정부 때, 서울 여의도에서 열린 농민대회에 참가한 농민 2명이 전경과의 물리적 충돌로 사망하면서부터다. 경찰 관계자는 “시위대와 경찰 사이의 거리를 확보해 극렬한 충돌을 막겠다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실제로 물대포 도입 이후 과거보다 양측의 부상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후 겨울철 영하의 날씨에도 물대포가 사용되는 등 당초 취지와 달리 신체에 위해를 가한다는 지적도 꾸준히 제기되어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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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함께 더불어민주당 김정우 의원은 아예 살수차가 옥외 소화전을 연결해 사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소방기본법 개정안을 제출했다고 6일 밝혔다. 개정안에 따르면 소방용수시설의 사용 용도를 소방 활동, 구조 활동, 대테러활동 등으로 명확하게 한정해 시위 진압에는 소방용수를 사용할 수 없도록 막고 있다.

유성운 기자 pirat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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