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병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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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쯧쯧… 어쩌다가 어린 애가 머리를 그렇게 크게 다쳤을까? 그래뇌는 다치지 않았수?』
큰 녀석을 데리고 교회를 갈 때면 노인들의 걱정어린 눈길을 받으며 대답하기 바쁘다.
특히 『뇌성마비 아이도 신체발육은 괜찮구먼』하는 얘길 들을 땐 이유를 써붙이고 다닐까 보다하는 생각마저 든다.
모르는 사람들이 그렇게 볼 수밖에 없는 것은 바로 국민학교 4학년짜리 큰아이가 치열이 고르지 않고 뻐드러지기까지 해서 지난가을부터 치아교정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위 아랫니는 철사틀로 고정시키고 윗니틀은 고무줄로 연결지어져 가죽끈으로 머리위를 둥글게 열십자 모양으로 묶은 모습은 사정을 알고 있는 이 애비l가 보기에도 때론 섬뜩하고 안쓰럽다.
겨울엔 털모자를 눌러써서 그런대로 견뎠는데 여름 동안은 머리와 얼굴에 닿는 가죽 때문에 가렵고 화끈거린다고 어찌나 떼를 썼는지 모른다.
제법 모양도 내줄 아는 녀석이니 불편도 하겠지만 무엇보다 보기 흉하니까 빨리 벗어버리고 싶을 게다.
그래서 우리집에선 조금이라도 위로하느라고 로마병정같이 멋있다고 즐겁게 표현하면 녀석은 그냥 픽 웃어넘긴다.
잘 참아내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만약 바지 대상 넓은 주름의 젊은 치마를 입히면 영화에서 본 로마병정처럼 투구를 쓴 모습이 깨나 의젓하고 그럴 싸할 거라고 짖궂은 상상도 해본다.
지난봄엔 캠프에 보내느라고 며칠간 투구를 벗어도 된다고 크게 인심썼다가 우리 부자가 치과의사선생님한테 야단맞기도 했다.
그일 빼곤 죽 잘 때도 투구를 벗지 않은 덕분에 얼마전에는 『앞으론 하루 12시간씩만 써도 좋다』는 기쁜 소식을 들었다.
그런데 형이하는 일이 라면 뭐든지 흉내내려하는 작은 녀석도 치열이 엉망이라 괜지 마음이 무겁다.
그래도 작은 녀석은 들뜬 소리로 『아빠, 이제 우리 집엔 로마병정이 둘이 되겠네요』하면서 형따라 하는 일에 마음 부풀어 한다. 저런 형제같으니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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