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특은 만들고 봐야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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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인터뷰=전육 정치부 차장]
6·3 청와대 회담을 갖고 이어 확대간부회의를 주재한 후 두 김씨와의 3자 회담까지 가진 이민우 신민당 총재가 삼양동 산비탈의 자택에 돌아온 것은 밤 9시였다. 현관에서 마중하는 부인 김동분 여사 뒤에 기자가 서있는 것을 보고는 『오늘은 아침 7시부터 지금까지 시달렸는데…』라며 쉬고싶다는 표정이었다.
그러나 『워낙 중요한 회담 뒤라 궁금한 게 많아서 왔다』고 하자 곧 『그러냐』며 자리를 고쳐 앉았다.
-전두환 대통령과의 오늘 회담을 스스로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논의한 문제들이 오늘 만나 금방 해결될 문제들이 아니지 않소. 내가 제일 중요시하는 것은 대통령의 얘기 중 「용공이라도 본인이 뉘우치는 사람에 대해서는 관용을 베푼다」는 대목입니다.
이것은 보안법 위반자라도 반성하면 석방한다는 뜻이 예요. 나로서는 상당히 기대하고 있어요.
또 한가지는 내가 유신헌법과 제5공화국 헌법을 함께 비판한 점입니다. 유신헌법이나 현행헌법이 모두 계엄 하에 누가 임명했는지도 모르는 이상한 기관(입법회의)에서 만들어져 국민의사와는 관계없다고 말했죠. 아마 듣기 싫었을 겁니다』
-회담에 큰불만은 없으신 모양이군요.
『평소 하고싶던 얘기를 기탄 없이 했다는 점에서는 그렇죠. 이원집정부제와 내각책임제의 문제점도 지적했지요. 이원집정부제는 프랑스가 실시하고있으나 우리 나라처럼 38선이 있는 나라에서는 조금만 문제가 생겨도 비상사태를 선포하는 등 대통령이 전권을 장악하게 될 테니 독립적인 내각수반이라는 게 필요없어진다고 그랬죠.
또 민주당시절 내각책임제를 해보니 같은 계파 내에도 분란이 그치지 않았고 「매그루더」 유엔군사령관이 4시간을 졸라도 대통령이 국군통수권을 발동하지 않아 5·16을 자초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말했죠.』
-그 말에 대통령이 어떤 반응을 보이던가요.
『아무 말이 없었습니다.』
-그럼 이 총재의 소신피력에 훨씬 많은 시간을 보냈군요.
『그런 셈이지요. 38선이 있는 한 대통령 직선제가 필요하며 대신 정치보복이 없어야 한다고 말했지요. 민주당 시절 자유당의 지구당 간부까지 공민권을 제한했을 때 내가 반대한 얘기도 했어요』
-대통령에게 개헌에 관해 구체적으로 어떤 요구를 하셨습니까.
『내가 이런 얘기를 좀 했지요. 이승만 박사는 건국의 아버지이고, 박정희 대통령도 나쁜 점이 있지만 경제발전을 이룩한 것은 좋은 점이라고 말했습니다. 전 대통령은 국민의 합의에 의한 개헌을 해서 민주발전을 이룩한 대통령이 되어야 한다고 했지요.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나 역사의 악순환을 막는다는 의미에서 직선제를 해야하고 요즘 우리의 평균수명을 80으로 봐서 그의 나이 이제 55세이니 30년이란 세월을 생각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습니다』
-대통령의 대답은 어떻습니까.
『대통령께서는 헌법내용에 대해서는 이래라 저래라 하지 않겠으며 헌특은 민정당에 맡기겠다고 하더군요. 여야가 진지하게 국민의 합의를 반영한 헌법으로 개정해주길 바란다고만 했습니다』
-정부·여당이 간선제 개헌안을 내면 타협하지 않겠다고 했습니까.
『현행 간선제는 안 된다고만 했죠. 그러나 그쪽에서 아무 말도 하지 않는데 내가 겸연쩍게 무슨 말을 하겠소. 그런데 말이야, 우리가 직선제 주장을 하지만 저쪽도 은근히 직선제를 고려하고 있는 게 아닌가하는 생각도 들어요』
-무슨 근거라도 있습니까.
『아냐, 아냐, 그런 것은 없어. 나의 내 육감이야』
-전반적으로 대통령의 시국관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셨는지요.
『우리가 평소 상상할 수 있는 얘기를 하더군. 대통령은 지금까지 비상사태나 계엄령을 선포한 일이 없다는 점을 지나가는 듯한 얘기로 했지만 내 귀에는 어떤 일이 있으면 할 수도 있다는 뜻으로 들리더군.
그리고 「나는 아첨하기 위해 관용을 베풀지는 않겠다」고 합디다. 임기가 얼마 안 남았지만 더 강력히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겠다고 말이야.』
-그래서 뭐라고 하셨습니까.
『이승만 박사의 예를 들었지. 스스로 하야해 이화장으로 갈 때 동정과 박수를 보내던 국민들 얘기를 했어요. 우리 민족은 몇 가지를 잘못해도 한 가지만 잘하면 지난날을 잊고 박수를 보낸다고요. 마지막으로 민주화를 잘해 역사에 기록되는 대통령이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발표를 보니 구속자 석방문제에는 대통령의 단호한 뜻이 담겨있던데요.
『일시적 전면 석방이야 곤란한 것 아닙니까. 그러나 법 절차의 과정에서 관용하겠다는 것은 시간을 두고 관용하겠다는 뜻이 예요. 작년만 해도 캄캄하던 시국이 여기까지 온 것을 생각하고 우리도 인내하면 좋은 방향의 변화가 오리라 믿습니다』
-그러나 구속자 석방에 관해서는 당내에 불만도 많고, 또 그것이 헌특 구성과 직결되어 있어 애로가 있지 않을까요.
『김대중씨가 구속자 전원석방이 헌특의 전제조건이 아니냐고 하길래 「헌특을 해보다가 안되면 깨야지 처음부터 그 조건 때문에 헌특을 외면 할 수는 없지 않느냐」고 했습니다. 전제조건을 내세워 참여도 않고 대화도 않는 것은 민주주의가 아닙니다.』
-김대중씨가 결국 동의할 것 같습니까.
『그도 독자적인 의도가 있겠지만 구속자 문제에 정부가 점진적으로 성의를 보이면 헌특은 임해야 합니다. 구속자 문제를 앞세워 헌특을 보이코트하자는 말도 할 수 있지만 그 다음에 올 사태도 생각해야죠. 국회에 들어가 노력도 안 해보고 또 한꺼번에 해결되지 않게 되어 있는 일을 해결해 내라면 무리지요.』
-그 문제에 김대중씨와 김영삼씨 간에 견해차이가 있습니까.
『그런 얘기는 나한테 묻지 말아요(일순간 이 총재는 정색을 했다). 두분 다 한길로 가겠다고 누차 발표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별 차이가 있겠소. 차이가 있더라도 서로 양해해야지.』
-대통령이 국회에서의 합의개헌이 가능하다고 생각하고 계시던가요.
『그러잖아도 재적과반수 발의에 3분의 2 통과 선을 야당이 무슨 수로 확보하겠느냐, 그러니까 야당으로서는 합의개헌의 길밖에 없는데 여당이 이에 정말 진지하게 응하는 것이냐고 물었지요. 대통령은 서로 못 믿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대답하더군요. 국회결정에 따른다는 그의 말에 가식은 별로 느끼지 못했습니다. 대통령의 개헌의지는 확고한 것 같아요.』
-대통령이 재야문제에 대해서는 마음먹고 말씀하였다던데요.
『정구호 청와대 대변인과 홍사덕 대변인에게 그 부분은 발표하지 말라고 했는데 정 대변인이 발표해 버렸어요. 내 참. 이왕 말이 나왔으니 밝히지요. 대통령이 신민당더러 보수인지 혁신인지 태도를 분명히 밝혀야할 것 아니냐고 하길래 나는 우리 당이 계급정당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국민 각층의 의사를 수렴하는 국민정당이라고 했지요. 우리가 재야를 입당시킨 것도 아니고 그들과 우리는 생각과 노선이 다르다고 대답했습니다. 아뭏든 민통련 관계는 아주 나쁘게 평을 하더군요.』
-김대중씨 사면·복권문제는 어느 정도 얘기했습니까.
『일언반구도 없었어요. 그쪽 생각이 어떻다는 것을 알고 있기도 하고, 자연인 이름은 꺼내고 싶지 않아서……』
-앞으로 청와대 회담에 대한 당내불만을 누르고 헌특을 성사시킬 자신이 있습니까.
『불만이 있어도 할 수 없지. 백 사람이 어떻게 생각이 똑 같겠소. 민주정당이니까 서로 이해시키도록 노력을 해 봐야죠. 임시국회를 진행해 가는 과정에서 자연히 협상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정 이번 임시국회에서 헌특이 구성되지 못할 형편이라면 추후 위임사항으로 넘기는 방법도 있지요. 그러나 이번에 구성해야지요』
-대통령과의 회담에서는 대화가 잘 되는 편입니까. 혹시….
『요즘은 확실히 대화가 잘돼요. 서로 욕심 없는 사람끼리라서 그런 모양이지. 내가 대통령보고 남은 임기 1년 8개월 동안 잘해 보시라고 했더니, 잔여 임기가 1년 9개월인데 왜 한 달을 깎느냐고 해 함께 웃었지. 저녁이라도 들면서 모셨어야 하는데 이렇게 되었다는 등 무척 신경을 써 주시더군.』
끝으로 이 총재는 『발표내용보다 실제 오늘 회담의 감은 훨씬 낙관적』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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