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선교사의 자주성-문교부의 교육내실화 방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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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학교장의 재량권을 대폭 확대한다는 내용의 초·중등교육개선안이 나왔다. 교사의 잡무를 줄여 주고 장기근속수당도 월4만∼8만원으로 인상, 교사의 처우를 개선한다는 내용도 포함되었다. 교사들에 의한「교육 민주화」선언 이후의 중요한 변화다.
흔히 「위기」로 표현되는 오늘의 교육상황이 교육에 대한 행정권력의 지나친 개입과 간섭에 한 원인이 있음은 누구도 부인 못할 사실이다.
개선안의 가장 중요한 내용이 학교장의 재량권 확대인 것만 보아도 그동안 헌법과 교육법이 보장하고 있는 교육의 자주성·전문성이 얼마나 위축되고 억제되어 왔지를 한마디로 말해준다.
교육일선의 목소리가 상향식으로 전달되어 정책에 반영될 소지가 차단된 채 관료적 발상만이 판을 친 결과 일선교사들의 사기를 저상 시키고 나아가서 교육의 질을 떨어뜨린 주요이유가 되었음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두말할 것도 없이 교육의 주체는 교수·교사들이며 또 그것이 확고히 보장되어야만 교육이 이 나라의 장래를 담보하는 기능을 다할 수 있다.
일선교사들이 자신을 「행정조직의 말단」쯤으로 인식하는 풍토 속에서 교육의 질이 높아지기를 기대하는 것은 연목구어와 다를 바 없다.
교사의 사기저하는 교사의 질의 저하를 부르고 교사의 질 저하는 교원의 질 저하의 원인임은 당연한 귀결이다.
물론 교육이라고 정치와 전혀 무관할 수는 없다. 교육민주화 요구가 정치의 민주화 요구와 일맥상통하는 측면이 있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렵다.
그러나 교육의 질 저하는 국가 장래에 암영을 던지는 심각하고 중대한 문제다. 다시 말해서 정권적 차원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적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따라서 문교부가 학교장의 재량권을 대폭 확대키로 한 것은 일단은 교육정상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평가될 수 있다.
교육행정은 일선교육을 고무하고 지원하는 기능을 하는 곳이지 그 위에 군림하는 상층구조는 아니다.
시위학생을 숨겨준 교사의 소속학교 교장이 하루아침에 직위해제 되는 식의 관료적 횡포가 만의 하나라도 되풀이된다면 교육의 민주화정책은 한낱 공염불에 불과하다.
학교장의 재량권 확대가 실질적으로 교육의 자주성·전문성 확보로 연결 지어 지려면 일선교사들의 적극저인 요구가 제도적으로 교육의 제반정책에 반영되어야 한다.
원천적으로 해결해야할 과제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다. 일선교사들이 교육의 주체적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교육행정이 교육현장의 요구를 수용하지 못한 채 외부의 압력이나 간섭에 의해 우왕좌왕한다면 교육정상화는 백년하청일 수밖에 없다.
정부가 참으로 교육의 민주화·자주화·전문화를 하고자 한다면 지금까지와 같은 교육을 통제하고 관리하려는 관행에서 벗어나야 할 뿐 아니라 교육의 내용도 쇄신해야 한다.
그러려면 당연히 획일 교과서의 획일주의 교육방식에서 탈피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다. 민주교육의 원리가 다양성에 있다고 할 때 교사들이 국정교과서를 기계적으로 교수하는 기능인으로 자족할 수 없는 일이다.
고교평준화도 시급히 시정해야하고 특히 사립고교의 입학은 학교자율에 맡기는 작업을 서둘러야 한다.
당국이 내놓은 교육개선방안이 우리의 교육을 「위기」로 몰아넣은 적폐를 시정하고 교육이 이 나라의 미래를 보장하는 본래의 기능을 다하는 출발점이 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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