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낼 돈 없다고 버티는 한진그룹…법정관리 카드 만지는 채권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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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한진해운의 조건부 자율협약 시한(9월 4일)이 다가오자 한진그룹과 한진해운 채권단이 ‘벼랑 끝 전술’로 맞서면서 치킨 게임을 벌이고 있다.

채권단, 부족한 자금 1조 마련 압박
이번주 안에 서류 내야 협약 가능

법정관리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는 채권단은 한진그룹의 한진해운 자구계획을 기다리고 있다. 자구안을 검토할 시간을 고려하면 협약 종료 1주일 전에는 서류를 제출해야 정상화 지원방안을 확정할 수 있다는 입장이다.

현희철 KDB산업은행 해운업정상화 지원단장은 “문제의 본질은 (한진해운이 정상화하려면) 내년까지 1조원~1조2000억원이 부족하다는 것”이라며 “이 또한 한진해운이 (자신에게 유리하게) 가정한 모든 조건이 이뤄졌을 때 나온 수치”라고 말했다.

삼일회계법인은 한진해운이 내년까지 3조원에 가까운 금액을 필요로 할 것으로 추정했다. 이 중 올해 만기가 오는 선박금융 채무 중 70% 정도를 유예받고, 용선료와 현재 용선료 시장가의 차액에서 25%를 할인받는데 성공하면, 당장 필요한 금액은 절반 정도로 줄어든다. 여기에 한진해운이 이미 제출한 자구안(4112억원)이 모두 이행된다고 가정해도 최소 1조원이 추가로 필요하다는 게 KDB산업은행의 계산이다.

채권단은 ‘현대상선과 형평성’도 거론한다. 현대상선과 한진해운의 자구안은 크게 두 가지 차이가 있다. 일단 현대상선은 현대증권 등 알짜 금융계열사를 매각했다. 이 과정에서 현대그룹 지위가 대기업에서 중견기업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한진그룹은 계열사를 매각한 사례는 없다.

또한 현대상선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 등 오너 일가가 300억원의 사재를 출연했다. 하지만 한진해운의 경우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나 최은영 유수홀딩스 회장이 내놓은 개인 재산은 없었다. 따라서 채권단이 ‘현대상선 사례’를 거론하는 배경에는 계열사·오너 지분을 매각하거나 이를 담보로 대출을 받아 어떻게든 추가 자금을 마련하라는 의미로 추정할 수 있다.

하지만 한진그룹이 자금을 추가 마련하기는 사실상 어려운 것으로 보인다. 한진그룹은 21일 “아직 자구안 제출 시점을 확정하지 않았다”며 미적거리고 있다.

계열사 지원은 배임 혐의로 이어질 수 있다. 한진그룹은 “부채비율이 1000%를 넘어가는 대한항공에서 한진해운 자금 지원안이 상정되면, 대한항공 이사들이 안건을 통과시키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현대상선 사례’를 들먹이는 것도 부당하다는 입장이다. 한진그룹은 한진해운 재무 상황이 이미 악화한 2014년 4월 구원투수로 투입됐기 때문이다.

양창호 인천대 동북아물류대학원 교수는 “한진해운은 2009년 이후 2조3000억원에 달하는 자구안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팔 수 있는 건 다 팔았다”며 “법정관리의 기준은 ‘의지’가 아니라 한진그룹의 ‘지원 여력’이 되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문희철·김경진 기자 reporte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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